친구가 새로 결성한 록밴드 공연을 보러 갔다. 서른 명 남짓한 관객 중 절반 이상이 친구들이다. 맥주 한잔씩 걸친 멤버들이 무대에 올라 튜닝을 시작한다. 이런저런 이펙터들을 점검하는 소리가 몽롱하게 울린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소리의 반향과 진폭을 체크하는 이 순간엔 묘한 쾌감이 있다. 정립되거나 합이 짜여진 상태가 아닌, 원형의 소리 입자들이 밋밋한 공간을 멋대로 부유하면서 평면적 시간을 입체적으로 분열케 하는 일탈감이 짜릿하다. 흡사, 캔버스에 마구 찍어댄 물감들이 무질서하게 뒤섞여 독특한 색감을 내는 것과도 비슷하다. 귀가 먹먹해지고 쿵쾅대는 드럼 비트에 의해 몸이 들썩거린다. 어떤 혼란스런 굴속으로 들어온 느낌. 다 아는 친구들이지만, 조명 아래 뚜렷하게 음영이 진 멤버들 얼굴은 이 순간만큼은 다른 낯빛이다. 뭔가 만들어지기 직전, 열이 오르고 스스로의 분명한 정체를 드러내 과시하거나 폼 내기 직전의 이 어슴푸레한 공명을 나는 사랑한다. 합을 맞춘 소리들이 서서히 노래의 꼴을 갖춰갈 때, 공연은 때로 싱거워진다. 그래 너 연주 잘한다, 고 이죽거리며 그냥 나와 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조명 아래 흔들리며 번지는, 보이지 않으나 명백하게 ‘원액’인 소리들. 아마 그걸 더 사랑해서인지 모른다. 정확하고 분명한 것들에게 없는 그림자가 더 짙어 보여서, 그래서 거기 마음이 새하얗게 설레서일 거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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