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명동예술극장 지하.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저녁 공연을 앞두고 태풍전야처럼 고요한 분장실 앞, 창고에서 남녀 3명이 곱게 둘러앉아 일제히 소리를 지른다. “오오~~” “야야~” “우와!”
감탄사 대결을 끝낸 이들은 곧 형용사 ‘즐겁다’를 온 몸으로 그리는 퍼포먼스를 시작한다. 궁색한 박수와 싱거운 웃음이 돌림노래처럼 이어진 후, 각자 소개가 이어진다.
“정리의 김일송입니다.” “내부자 손신형입니다.” “열정의 막내 오세혁입니다. 하하.” “왜 부끄러워하세요? 열정 없으십니까?” “오랜만에 막내를 해봐서…. 제가 극단에서는 대표지 않습니까?”
어색한 분위기를 돌파해 보겠다는 듯 ‘정리의 김일송’이 외친다. “안녕하세요! 국립극단 오디오프로그램북 제 이~회!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시작….”
국립극단이 연극계 뒷이야기를 담은 팟캐스트 ‘오프 더 레코드’를 출시한다. 제작, 연출 등 공연 현장을 발로 뛰는 사람들이 모여 작품과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소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올해는 국립극단이 장기 공연하는 연극과 연출자, 배우들의 뒷이야기를 소개하고, 청취자 반응을 보며 연극계 전반으로 넓힐 계획이다.
공연전문잡지 ‘씬플레이빌’의 김일송 편집장이 사회를 맡고 제작피디로 잔뼈가 굵은 손신형 국립극단 홍보마케팅팀 과장이 작품 뒷이야기를 고발한다. 연출가인 오세혁 극단 걸판 대표가 술과 밥으로 빚은 연극계 일화를 들려준다.
녹음 전 만난 세 사람은 “구상은 창대했으나, 시작은 미약했다”고 입을 모았다. “처음 구상은 ‘새 미디어를 개발해 공연 관객층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 였어요.(웃음) 한데 1회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보니 준비하는 게 만만치 않은 거예요. 그래도 녹음하면서 셋 다 ‘되겠다’ 싶어서 우선 국립극단 장기공연부터 소개하자고 방향을 잡았죠.”(손신형) 뮤지컬계 이모저모를 알려주는 ‘스튜디오 뮤지컬’ ‘뮤지컬 이야기쇼 이석준과 함께’ 등이 인기몰이 중이지만 공연계 전반, 특히 연극을 아우르는 눈에 띄는 팟캐스트가 없다는 점도 이들이 관심을 보인 이유다.
만만치 않은 녹음 과정은 이렇다. 1년에 20개가 넘는 국립극단 작품 중에 어떤 작품을 소개할지 고르고, 연출가 배우들에 관한 일화를 각자 준비한다. ‘조씨고아’처럼 중국 잡극을 원형으로 한 작품이면 잡극 공부도 해온다. 각자 수련 후, 첫 공연을 함께 보고 술자리를 겸한 ‘끝장 수다’ 뒤 각자의 멘트와 역할을 정리한다.
“모든 작업이 가내수공업”(손신형)으로 이뤄지다보니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시험방송격이었던 1회 ‘아버지와 아들’편은 3시간 녹음해 50분 분량으로 편집했는데, 너무 심혈을 기울이다 공연 마지막 날에야 완성본을 만들었다. 게다가 시험방송이란 이유로 팟캐스트 플랫폼을 쓰지 않고 국립극단 블로그에 오디오북 파일로 올렸다. 덕분에 방송 문패도 팟캐스트가 아닌 오디오프로그램북이 돼버렸다. “충성도 강한 이들만 들을 수 있다”는 애정 어린 항의가 쇄도했다.
2회부터는 주제별로 20분씩 묶은 파일을 차례로 팟캐스트 플랫폼 팟빵에 올린다. 워밍업 격인 1부가 11일 올라왔고 연출 배우 뒷이야기 등이 조만간 공개될 예정이다.
“공연 보고 뒤풀이 하면 너무 재미있거든요. 술자리에서 나는 이 장면이 좋더라, 이건 아쉽더라. 사실은 무대 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배우 연출 실제로 보면 어떻다더라…. 한데 다음날 리뷰기사는 정제돼 나오잖아요. 그런 뒤풀이 같은 방송이 됐으면 좋겠어요. 단, 연극 아직 안 본 관객들도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방송이요.”(오세혁)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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