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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살았다면 수능 봤을텐데..."

입력
2015.11.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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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이준석, 자신만 탈출”

당시 상황 설명하자 곳곳서 눈물

삼풍 때도 적용 안 된 부작위 살인

대형 참사 새로운 판례 제시

자녀들이 살아 있다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렀을 1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을 찾은 세월호 참사 유족들은 바람만 불어도 몸이 아린 듯 눈물바람이었다.

오후 2시에 시작된 세월호 이준석 선장의 상고심 선고를 보기 위해 모여든 유족 40여명은 30분 전부터 대법정에 조용히 입장했다. 재판이 시작되면서 대법관 13명이 좌정할 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차분하게 냉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양승태 대법원장이 직접 세월호 이준석 선장의 혐의를 설명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양 대법원장이 “이준석은 승객들에게 선내 대기명령을 내린 채, 침몰 직전까지 대기명령을 따라 대기중인 승객을 퇴선시키는 조치없이 결국 자신만 나왔다”며 침몰 상황을 묘사하자 눈시울을 붉히기 시작했다. 30분만에 이 선장에 대한 살인 인정이 공표됐을 때도 이들은 조용히 흐느끼기만 했다. 유족들은 기자회견을 위해 대법원 정문 앞으로 이동할 때, 대법원 직원들이 일부 유족들이 준비한 촬영을 제지하다 시비가 일었을 때도 왈칵 눈물을 쏟았다. 작은 시비에도 눈물을 쏟고 고성이 오가는 모습은 그들이 담고 있는 상처의 깊이가 여전함을 보여주었다.

희생자 가족들로 구성된 4ㆍ16세월호가족협의회 소속 회원 40여명은 선고 후 기자회견에서 “대법원이 선장과 선원들의 살인죄를 인정하면서 1년 7개월 동안 인고와 고통의 시간이 조금이나마 위로됐다”고 밝혔다. 전명선 피해자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우리 아이들이 있었다면 자기의 꿈과 미래를 위해 수능을 봤을 시간이다. 가족들도 이 자리에서 서서 기자회견을 하지 않고 시험으로 고생했을 자녀와 함께 했을 것”이라고 했다.

아들 이재욱군을 잃은 어머니 홍영미씨는 “250여명의 아이들이 오늘 수능을 못보고 하늘 위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며 말끝을 잇지 못했다. 홍씨는 천천히 “아직 당시 구조에 실패했던 해양경찰에 대한 재판이 남아 있다”며 “대한민국의 자유 평등 정의가 끝까지 실현될 수 있는지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상고심 선고는 피고인 입장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이씨 등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선장의 살인죄가 인정된다고 해서,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세월호 사건은 새로운 판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법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기존에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살인’이 인정된 경우는 포박ㆍ감금 후 방치해 사망케 하거나, 미끄러져 물에 빠지게 유도한 뒤 구조하지 않아 익사하게 하는 방식의 ‘계획적 범죄’에 주로 적용됐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때도 검찰은 고(故) 이준 전 삼풍건설산업 회장에게 안전관리 부실 등에 따른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적용을 검토했지만, 고의 입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만 적용해 징역 7년 6개월 형이 선고됐다.

구조조치 또는 구조의무 위반 여부가 쟁점인 사안에서 부작위에 의한 살인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은 “피고인 이준석은 퇴선 직전이라도 쉽게 퇴선 상황을 알려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음에도 그것마저도 하지 아니한 채 퇴선했고, 그 후에도 해경에게 선내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아니하는 등 승객의 안전에 대해 철저하게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승객 등의 탈출가능성이 점차 희박해져 가는 상황을 그저 방관했음을 알 수 있다”며 “이런 행태는 승객 등을 적극적으로 물에 빠뜨려 익사시키는 행위와 다름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살인 의도에 있어서 ‘미필적 고의’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살인죄가 성립되려면 고의성이 인정돼야 한다. 대법원은 “피고인 이준석의 이 같은 행태는 자신의 부작위로 인하여 승객 등이 사망에 이를 수도 있음을 예견하고도 이를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것이므로 부작위에 의한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퇴선 방송을 안 하고 먼저 퇴선하면 승객들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예측할 수 있었고, 이는 승객의 안전에 대한 선장을 역할을 의식적ㆍ전면적으로 포기한 것이란 설명이다.

김청환기자 chk@hankookilbo.com

김현빈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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