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이탈리안 잡’은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촘촘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도 호평을 받았지만 이 영화의 최대 수혜자는 누가 뭐래도 소형차 ‘미니(MINI)’였을 겁니다.
BMW그룹이 1994년 인수한 미니는 영화 한편 덕에 인기 브랜드로 부상하며 제2의 전성기를 열어 젖혔습니다. 이후 국내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수입차가 됐습니다.
미니의 매력은 시선을 빨아들이는 앙증맞은 디자인과 단단한 성능입니다. 국산 경차 정도의 작은 차체는 미니란 브랜드에 걸맞게 미니를 상징하는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난 6일 강원 홍천군에서 열린 ‘BMW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행사에 나타난 ‘뉴 미니 클럽맨’은 더 이상 작은 차체의 미니가 아니었습니다.
둥그런 헤드라이트가 박힌 전면은 미니의 디자인 그대로였지만 차체, 특히 뒤가 아주 길었습니다. 뉴 미니 5도어 모델 대비 전폭은 90㎜, 휠베이스는 100㎜, 전장은 270㎜ 늘어났습니다. 미니 브랜드 역사상 가장 큰 몸집입니다.
커진 차체를 보완하기 위해 안개등 옆에는 공기가 통하는 에어커튼이 뚫렸고, 앞문 아래 휠 하우스에는 에어 브리더가 있었습니다. 둘 다 미니에는 처음 적용된 디자인입니다.
뒷좌석에 앉아보니 이전 미니에 비해 확실히 편안합니다. 실내 공간감은 웬만한 준중형 세단 못지 않았습니다. 기본 트렁크 용량이 360ℓ이고, 뒷좌석을 접으면 적재공간이 1,250ℓ로 늘어난다니 짐을 싣기 어렵다는 미니에 대한 편견도 날아가 버립니다.
센터페시아 중앙의 커다란 원형 디스플레이 등 내부는 미니 5도어의 디자인을 이어 받았습니다. 다만 기존의 원형 송풍구의 형태는 사각형으로 바뀌었습니다.
미니 브랜드 최초로 메모리 기능이 있는 운전석 전동 시트도 설치된다는데 시승차는 수동식이었습니다. 운전석 전동 시트는 내년 출시 모델부터 적용 예정이랍니다.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와 눈에 잘 띄어 요즘 고급차에 기본으로 달려 나오는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갖췄습니다.
트렁크에는 옆으로 여는 스플릿 도어가 달려 있었습니다. 이런 방식의 도어는 1969년 클럽맨이란 이름을 달고 나온 첫 모델부터 적용됐습니다. 좌우로 각각 90도 이상 열리기 때문에 좁은 공간에서도 짐을 부리기가 쉽고, 힘이 적게 들어 여성들도 여닫기가 수월합니다.
인스트럭터가 인도하는 30분간의 시승이라 모든 것을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핸들링과 변속이 상당히 유연했습니다. 시승차는 세 가지 트림 중 1,998㏄ 4기통 가솔린 엔진이 장착된 뉴 미니 쿠퍼 S 클럽맨이었습니다. 최대 출력 192마력에 최대 토크 28.5㎏ㆍm이니 스펙상으로도 국산 2,000㏄ 중형 세단보다 파워가 높습니다.
잠시 맛본 부드러운 주행은 8단 스텝트로닉 변속기의 영향인 듯 했습니다. 기존 미니에는 6단 변속기가 들어갔지만 쿠퍼 S 클럽맨에는 미니 최초로 8단 변속기가 적용됐습니다.
기본 주행 모드 이외에 스포츠와 그린 모드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주행 시간이 짧아 작동해 보지는 못했습니다.
뉴 미니 클럽맨은 단종 됐다 2007년 부활한 클럽맨에 이은 2세대 클럽맨입니다. 올해 6월 독일 뮌헨에서 글로벌 론칭을 한 뒤 지난 9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도 소개됐습니다. 국내에는 1세대가 들어오지 않았지만 2세대 클럽맨은 오는 20일 출시됩니다. 3가지 트림 중 1,955㏄ 4기통 디젤 엔진을 얹은 ‘뉴 미니 쿠퍼 D 클럽맨’은 아직 국내 인증을 받지 않아 가솔린 모델이 먼저 나옵니다.
클럽맨은 작지만 강한 파워로 재미있게 운전하는 미니의 정통성에서는 벗어나 있습니다. 승차감과 일상에서의 활용도를 높이고 장거리 운전 시 편의성을 쫓기 때문이죠. 2011년 등장한 ‘미니 컨트리맨’이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표방했다면 클럽맨은 미니의 왜건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 A클래스나 아우디 A3, 폭스바겐 골프 등과 맞짱을 뜨겠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컨트리맨이 처음 나왔을 당시 미니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정통성이 무너졌다”는 불만이 꽤 있었는데 클럽맨에 대해서도 비슷한 말이 나올 것 같습니다. 하지만 BMW그룹 측은 “컨트리맨에 대한 불평은 없어지고 곧 인기 모델이 됐다”고 설명합니다.
국내 판매량을 보면 이 말이 틀리지는 않습니다. 올해 1~10월 판매된 미니 6,098대 중 컨트리맨은 20%가 넘는 1,461대가 팔렸습니다.
클럽맨이나 컨트리맨은 보다 넓은 시장을 확보하려는 미니의 방향성을 상징합니다. 포르쉐가 카이엔이나 마칸 같은 SUV로 재미를 보고, 최고급 세단의 대명사 벤틀리가 SUV ‘벤테이가’를 내놓고, 재규어가 브랜드 역사상 첫 번째 SUV ‘에프-페이스(F-PACE)’를 내년에 출시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 우물만 팠던 브랜드들이 다른 우물을 또 뚫기 위해 열을 올리는 것은 숨막히는 경쟁 속으로 빨려 들어간 자동차 업계의 단면입니다.
글ㆍ사진=김창훈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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