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어도 소용 없고 대화를 청해도 받아주지 않으면서 무조건 안 된대요. 부모 마음 안다는 사람들이.”
자폐성 1급의 18세 아들을 둔 김남연(49) 전국특수학교 학부모대표자협의회 대표는 12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아들이 다닐 학교 지어달라는 제가 욕심 부리는 거냐고 몇 번이나 되물었다. 발달장애인이 사회 구성원으로 제 역할 하기 위해 익혀야 할 직업을 미리 체험해보는 공간인 ‘서울커리어월드’ 공사를 막는 지역 주민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커리어월드(발달장애인 직업능력개발훈련센터)는 지적ㆍ자폐성 장애를 겪는 발달장애인 가운데 고등학교 특수학급에 재학하거나 졸업한 발달장애인들의 직업교육 시설이다. 노동부와 교육부는 발달장애인 교육의 질을 한 단계 더 높이자는 차원에서 서울을 시작으로 커리어월드 설립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지으려던 첫 시설부터 주민들의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당초 9월 착공 예정이던 서울커리어월드는 주민들의 반발로 공사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고 있다. 제기동 성일중학교 내 유휴시설을 개조해 직업체험 실습실 14개와 테마존 등을 짓는 이 공사에 지역주민들이 심지어 ‘꺼져’라는 팻말까지 들고 나와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건립 반대 주민들은 성일중 학생들의 안전문제와 교통량 증가 가능성 등을 이유로 내세운다. 주민들은 ‘커리어월드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우리 지역에는 안 된다’는 논리다. 전형적인 ‘님비’(지역이기주의)’아니냐는 지적에는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성일중 학생들에게만 강요하는 것은 역차별”이라고 맞서고 있다.
김 대표는 “최근까지 있었던 여섯 차례 주민설명회에서는 설립 반대 주민들이 물리력까지 사용하며 강하게 반대할 때도 있었다”며 “‘부자 동네인 강남에는 못 만들고 만만한 서민동네에 만들려느냐’는 원성도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 서울 시내 특수학교는 총 29곳이다. 그러나 25개 자치구 가운데 8개 자치구에는 특수학교가 한 곳도 없다. 8개 구에는 성일중학교가 있는 동대문구와 이와 인접한 성동구, 중랑구도 포함돼 있다.
김 대표는 “지역 주민의 반발로 2002년 이후 13년간 서울 시내에는 특수학교가 단 한 곳도 설립되지 못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서울 시내에서 특수교육이 필요한 학생은 1만 3,000여명에 이르는데 특수학교 정원은 4,600여 명으로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특수교육을 받지 못하는 8,500여 명은 일반학교를 다니고 있다.
주민들의 심한 반대에 부닥친 서울커리어월드는 22일까지 일단 공사 중단에 들어갔다. 11일 오후 서울시교육청과 주민들이 ‘끝장 토론’을 벌인 결과다. 이날 토론에서 시교육청은 주민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커리어월드 1층에 주민 편의시설을 설치하고 성일중학교의 문화예술선도학교 지정 및 지원 등 4개 조건을 제시했다. 주민 대표들이 이 조건을 주민들과 토론하겠다며 그 동안 공사 중단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제 아들은 중증으로 커리어월드가 건립돼도 혜택을 전혀 보지 못하지만 언제까지 특수학교 관련 시설이 이렇게 떠돌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나섰다”며 “커리어월드는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장애아들을 보듬는 배려 있는 사회인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라고 말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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