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2일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를 주재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비공개에 부쳐온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조만간 공표하겠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다양한 모델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추정했으며 현재 추정치의 안정성을 점검 중"이라며 "가급적 빨리 잠재성장률 수준을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의 성장 잠재력, 다시 말해 한 나라가 보유한 자본, 노동 등 생산요소를 모두 투입해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 없이 이룰 수 있는 성장률 최대치를 뜻한다. 최근 연 2~3%대의 저성장 추세가 지속되면서 국내 잠재성장률이 심각하게 저하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자 한은이 논란 정리 차원에서 수치 공개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한은의 잠재성장률 추정치는 3%대 초반으로 알려져 있다.
이 총재는 이날 금통위에서 기준금리(현행 1.5%) 동결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국내 경기가 소비를 중심으로 완만한 회복세가 진행될 것으로 보이고 주요국 통화정책 변화 여하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기자회견 주요 내용.
-민간소비 호조가 블랙프라이데이 행사 등 일시적 요인에 의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3분기 소비 개선에는 개별소비세 인하, 블랙프라이데이 행사 등 정부 정책효과가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주체 심리가 개선되고 임금 증가로 가계 실질소득이 늘어난 점도 많은 기여를 했고 앞으로도 소비 개선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손성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가 오늘 국내 강연에서 "한은이 최대한 빨리 기준금리를 0%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기준금리가 1.5%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보면 인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로금리까지 낮춰야 한다는 주장은 과하다. 그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간과한 게 아닌가 싶다.
-잠재성장률이 2%대로 하락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3%대 중반이던 잠재성장률이 투자 감소, 노동력 감소 등을 겪으며 다소 낮아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2%대로 낮아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한은의 잠재성장률 추정치를 공개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다만 잠재성장률이 비관측 변수인 만큼 추정방법 등에서 안정성을 확인한 뒤에 발표할 예정이다."
-내년부터 적용될 중기 물가안정목표 설정 진척사항은. 이번 목표 설정에 있어 주요 고려사항은.
=한은의 안을 갖고 정부와 협의 중이다. 가급적 협의를 빨리 끝내고 결과를 발표하겠다. 알다시피 현행 물가안정목표(2013~15년 2.5~3.5%)는 적용 기간 내내 실제 물가상승률과 동떨어져 있었다. 유가 하락 등 공급충격이 가장 컸지만, 인플레이션 동학구조 변화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이번 목표 설정에 있어서는 인구구조 변화, 글로벌 밸류체인 변화 등을 면밀히 분석했고, 물가의 중기적 수요요인인 글로벌경제 성장세, 우리나라 잠재성장률 등을 고려했다.
-정부 주도로 기업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긴박하게 진행되다보니 한국경제가 과거 외환위기 때처럼 안좋은 거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 구조조정은 원래 상시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원활히 진행되지 못하면 경제 효율성을 해치게 되는 만큼 정부가 정책적으로 주도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현재 경제가 안좋아서라기보단 대외 여건이 녹록지 않은 만큼 기업 구조조정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12월 금리인상을 단행할 것이란 시장 전망에 한은도 동의하나.
=지난달 28일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12월 인상 기대가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수출회복 없이 내수 회복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출 회복이 지연되면 생산 측면에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한다. 이는 임금이나 고용에 영향을 주면서 내수 둔화를 초래한다. 역으로 내수 측면에서 소비 및 투자가 개선되면 생산을 호전시키는 상방 압력으로 작용한다. (양 측면이 있으므로) 수출회복이 안되면 내수회복이 안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수출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수출부진이 내수회복을 제약하는 것은 사실이다.
-국고채 장기물에서 금리 역전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자금유출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0년물 국채금리가 한국과 미국에서 거의 같은 수준이다. 그러나 외국인이 주로 투자하는 채권은 만기 5년 이하의 중기 채권이고, 여기선 국채 금리가 미국보다 높은 상황이라 자금유출 우려가 심각한 것은 아니다.
-지난달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과도한 유동성이 구조조정을 제약하는 요인"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한계기업이 늘어나는 것은 기본적으로 경기 부진에서 비롯하지만, 저금리 기조 장기화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금리정책은 기대효과도 있지만 부정적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까지는 거시경제 상황이 중요했고 성장 모멘텀을 살리는 것이 시급했기 때문에 저금리를 유지해왔다. 여전히 성장 모멘텀 회복이 중요하지만 한계기업 구조조정을 병행할 때가 왔다고 본다.
이훈성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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