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여명의 미술인이 차기 국립현대미술관장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바르토메우 마리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MACBA) 관장(사진)의 정치 검열 의혹을 우려하며 ‘국립현대미술관장 선임에 즈음한 우리의 입장’을 발표했다. 서명에 참여한 작가 중에는 2015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자 임흥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3년 수상자 공성훈과 2014년 수상자 노순택 등 유명 작가들이 포함됐다.
문제의 검열 의혹은 마리 전 관장이 MACBA에서 사임하는 원인이 됐던 ‘짐승과 주권(La bestia y el soberano)’ 전시 취소 사건이다. 미술 전문매체 아트넷에 따르면 마리 전 관장은 3월 16일 전시에 나온 오스트리아 작가 이네스 도우약의 조각품 ‘정복하기 위한 발가벗음’을 철거하도록 요구하다 작가와 담당 큐레이터가 반대하자 전시를 취소했다. 이 작품은 스페인의 전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와 볼리비아 노동운동가 등의 성행위 장면을 묘사했다.
마리 전 관장은 “그 날 작품을 처음 보고 미술관의 방향성과 맞지 않다고 생각해 전시를 취소했다”고 주장했지만 수석큐레이터 발렌틴 로마와 수석 공공기획자 파울 프레시아도는 그가 오래 전에 참여작가 명단과 작품 설명문을 확인했다고 반박했다. 결국 마리 전 관장은 3월 22일 “신뢰를 잃었다”며 두 사람을 해고하고 자신도 사임했다. 일각에서는 카를로스 1세의 부인인 소피아 왕비가 MACBA 명예이사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시 취소에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왔다.
성명 참여자들은 “영화 ‘다이빙벨’ 상영으로 인한 부산영화제 예산지원 삭감, 연극계의 사전검열, 광주비엔날레에서 홍성담의 ‘세월오월’ 철거 등 공공 문화예술기관에서 검열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마리씨의 관장 후보 선정과 무관하지 않다”며 “마리씨는 문제의 사건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고, 정부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실질적 독립성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미술인들은 14일 오후 10시 서울 수표동에 있는 문화공간 신도시에서 ‘국립현대미술관장 선임에 즈음한 우리의 입장 토론회’를 열고 앞으로 행동을 결정할 방침이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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