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쇼팽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은 조성진의 인기가 뜨겁다. 콩쿠르에서 연주한 쇼팽 에튀드와 피아노 소나타 2번 등이 수록된 데뷔 앨범은 클래식 음반으로는 이례적으로 초도(初度) 5만 장을 찍었으나 며칠 새 4만 장이 나가 추가로 5만 장 제작에 들어갔다고 한다. 현재 주요 음반 차트 1위다. 마이너 레이블에서 인기 없는 레퍼토리를 담은 클래식 음반의 첫 수입 물량이 한 자리 수에 불과한 것이 국내 고전음악 음반 시장 규모다.
연말까지 10만 장이 팔린다고 하면 이 숫자는 웬만한 아이돌 그룹의 판매량을 뛰어넘는다. 9월 말까지 국내 음반 판매량 1위는 EXO 2집으로 48만 장이다. 소녀시대 5집은 13만 여장 판매되었다. 10만 장이면 전체 음반 판매 순위 15위에 해당한다. 예능 프로그램, 드라마, 영화, 광고 등 여러 매체를 통해 활동하는 걸그룹 대부분도 음반 판매량으로는 조성진에 미치지 못한다.
조성진의 수상을 다루는 언론도 뜨겁기는 마찬가지다. 한 공중파 방송은 쇼팽 콩쿠르 대상을 “음악계 노벨상”에 비유하며 한국인 최초 우승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과장이자 호들갑이다. 콩쿠르 우승은 전문 연주자의 길에 나선 젊은 연주자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지, 수십 년간 한 분야에서 정진해 일가를 이룬 학자나 예술가의 업적을 상찬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인 최초 대상”을 지나치게 강조할 일도 아니다. 이제 한국인이 국제적으로 인정 받았다는 것 자체에 흥분하고 1등이라는 숫자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때도 되었다.
국제 클래식 음악계의 경쟁이 국적과 완전히 무관하게 펼쳐지는 장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번 수상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성취이자 영광이다. 또 2005년 임동혁, 임동민 형제도 쇼팽 콩쿠르에서 수상한 적이 있다. 대상이 아닌 3위 입상이었기에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지만 이 역시 탁월한 성과다. 콩쿠르는 어쩔 수 없이 순위를 매길 수밖에 없지만 음악과 예술의 성과가 반드시 이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오로지 쇼팽의 곡으로만 경쟁하는 콩쿠르에서 2위에 그쳤다고 해서 대상 수상자보다 못한 연주자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5년에 한 번 열리며 종종 대상 수상자를 뽑지 않기도 하는 쇼팽 콩쿠르의 권위는 크다.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우치다 미쓰코 등 역대 수상자들(순위를 불문하고) 가운데는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즐비하니, 최고의 등용문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레퍼토리가 쇼팽에만 국한된 피아니스트로 머물고 만 수상자, 상의 후광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성장하지 못한 연주자들도 많다.
1960년 18세의 나이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쇼팽 콩쿠르 대상을 받은 폴리니가 수상 직후 콘서트를 극도로 자제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루빈스타인이 “여기 있는 우리보다 피아노를 더 잘 치는 소년”으로 칭찬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폴리니는 밀려드는 공연 요청을 마다하고 미켈란젤리 문하에 들어가 수련의 기간을 가졌다. 그가 다시 무대에 등장한 때는 60년대 말이고 데뷔 앨범은 71년도에 발매되었다.
물론 폴리니가 조성진의 모델이 될 필요도 없고, 지금의 음악 비즈니스는 60년대에 비할 바 없이 복잡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이제 선배 수상자들의 찬란한 길을 뒤따르기 위한 출발점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조성진을 응원하는 길은 그를 “쇼팽 콩쿠르 한국인 최초 대상 수상자”로 한정해서 소비하지 않는 것이다.
음악의 세계는 콩쿠르의 그것에 비할 수 없이 넓고 깊다. 이제 콩쿠르에 나가지 않아도 좋다고 해맑게 웃는 젊은 연주자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으니 좋은 것. 조성진이 한국인이어서 더 기쁜 이유는 이것 아닐까. 그가 앞으로 들려줄 바흐, 베토벤, 슈베르트가 기대된다.
박정현 건축평론가ㆍ도서출판 마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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