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 써 놓은 거 있어?” 가수 루시아(29ㆍ본명 심규선)는 지난 10월 어느 날 밤 지인에게서 뜬금없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작곡 제의에 “누구에게 줄 곡인데?”라고 물으니 “김준수”란 답이 돌아왔다. 새 앨범 타이틀곡으론 댄스곡을 점찍어 두었으나 추가로 수록할 발라드곡을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주어진 마감 시간은 이틀. “써 놓은 곡이 없다”며 전화를 끊고 나니 욕심이 생겼다. 바로 책상 앞에 앉아 김준수에 맞는 곡을 떠올렸고, 두 시간 만에 ‘꼭 어제’라 이름 붙인 악보를 채웠다. “의뢰한 발라드곡만 80여 곡이 된다”는 지인의 말에 루시아는 큰 기대 없이 녹음 파일을 보냈다. 그런데 웬걸, 며칠 뒤 “‘꼭 어제’를 타이틀곡으로 쓰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2003년 데뷔한 김준수가 발라드곡을 앨범 타이틀곡으로 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10일 서울 합정동 파스텔뮤직 사무실에서 만난 루시아는 “정말 안 믿겨졌다”고 했다.
‘김준수 작곡가’로 주목 받은 루시아는 비주류 홍대 음악신에선 제법 인지도가 높은 5년 차 가수다. 2010년 파스텔뮤직을 만나 데뷔했고, 에피톤프로젝트 객원보컬로 참여한 ‘선인장’(2010), ‘어떤 날도, 어떤 말도’(2011) 등으로 인지도를 높였다. 속삭이듯 아련한 목소리에, 인형 같은 외모로 ‘홍대 여신’이라 불린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엔 우여곡절도 많았다. 2005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그룹 아스코로 나가 금상을 차지한 뒤 장밋빛 미래를 꿈꿨지만 “넌 왜 (같은 해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은) 익스처럼 안 돼?”라는 얘기를 들으며 대인기피증을 겪었다. UCC가 유행하던 2007년, 인터넷에 올린 ‘록시’(뮤지컬 ‘시카고’ 삽입곡) 가창 동영상이 조회수 20만 건을 넘으며 또 다시 기회가 왔지만, 곧 절망으로 변했다. 대형 가요기획사 등 여러 곳에서 러브콜이 왔는데 “원더걸스 같은 걸그룹”을 바라거나 성형수술을 제의했다.
홍대를 기반으로 활동하면서 가요에 가까운 노래를 불러 정체성이 다소 모호했던 게 고민이었던 루시아는 지난 5일 ‘라이트 앤드 셰이드 챕터2’란 앨범으로 한층 밝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만약 삶이 한 곡의 노래와도 같다면, 이제 겨우 첫 소절 불러 본 거야’란 ‘그 노래’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위로하고, 다른 이들까지 보듬기 시작한 그를 만날 수 있다. 루시아가 바라는 것도 ‘그 노래’ 속 가사처럼 “누군가의 퇴근길, 홀로 사는 이가 자취방 골목길을 걷다 위로를 받는 음악을 만드는 일”이다.“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홍대 여신이 아니라 홍대 여식으로요, 하하하”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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