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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막차’라는 의식… 내 시대 이야기 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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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막차’라는 의식… 내 시대 이야기 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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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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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전성태 작가. 올해 등단 20주년을 맞은 그는 “후배들이 받을 상인 것 같아 기쁘면서도 미안함이 크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제48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전성태 작가. 올해 등단 20주년을 맞은 그는 “후배들이 받을 상인 것 같아 기쁘면서도 미안함이 크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누가 엉덩이를 밀어 담 위로 넘겨 버린 것 같아요. 정신 차리고 보니 중견작가가 돼 있네요.”

제48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전성태(46) 작가는 10일 기자와 만나 “지나간 버스가 다시 와서 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올해는 작가의 등단 20주년이다. 수상한 소설집 ‘두 번의 자화상’(창비)엔 2009년부터 쌓인 12편의 단편이 담겼다. 작가는 이를 “작가 생활 20년 만에 두 번째로 그린 자화상”이라고 부른다. “이 책을 만드는 동안 일이 많았어요. 부모님을 저 세상으로 보냈고, 생물학적 나이로 마흔을 넘겼고, 작가로선 20년을 살았죠. 다들 겪는다는 슬럼프가 저에게도 찾아왔던 것 같아요.”

전남 고흥 출신의 작가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 등단했다. 농촌 사회를 배경으로 풍요로운 방언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은 또래 작가들 중 전성태를 따로 언급하게 만들었다. 작품마다 녹아 있는 분단, 다문화, 민족 같은 묵직한 주제는 그에게 ‘리얼리즘 문학의 계승자’ ‘민족문학 진영의 적자’ 란 위치를 부여했다. 그러나 정작 작가 자신이 느껴온 것은 막차를 잡아 탄 자의 외로움이다.

“제가 69년생, 89학번이에요. 늘 스스로 ‘막차’라는 의식이 있습니다. 민족과 억압, 혁명을 화두로 올렸던 마지막 세대, 문학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마지막 세대죠.”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회 분위기는 급변했고 민족이나 혁명 같은 단어는 빠르게 퇴색했다. 문학에서도 모더니즘이 싹텄다. 그는 한 순간에 지나간 시대의 정신을 좇는 돈키호테 신세가 됐다. “나는 이 시대에 쓸모 있는 작가인가”라는 질문이 지속적으로 찾아왔다고 한다. 이번 소설집은 80년대와 90년대의 경계에 선 작가가 그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성묘’와 ‘망향의 집’ ‘로동신문’은 모두 분단현실을 배경으로 하지만 80년대 이산가족 상봉의 뜨거운 눈물 같은 건 없다. ‘성묘’에서 박 노인은 간첩과 무장공비들이 묻힌 적군묘지 옆에서 점방을 운영한다. 퇴역군인으로 아직도 옷장에 전투복을 보관하고 있는 그가 30년간의 직업군인 시절을 어떻게 보냈을지 ‘요즘 것’들은 짐작도 할 수 없을 터다. 어쨌든 지금은 중공군 묘지를 찾는 이들에게 제수용품을 팔며 살아간다. 어느 날 북한 무장침투공작원의 묘 앞에 국화다발이 놓인 것을 발견한 박 노인은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간첩 무덤에 놓인 국화라…” 뿌리 깊은 반공정신과 인도주의 사이에서 망설이던 박 노인은 슬그머니 국화다발을 치운다. 누군가의 성묫길이 계속될 수 있도록. ‘로동신문’은 아파트 폐품더미 중 북한에서 발행되는 로동신문이 나오면서 분리수거를 하던 노년의 경비 두 명이 혼비백산하는 내용이다.

분단이라는 바랜 단어를 바래진 모습 그대로, 때론 해학을 섞어 풀어 놓는 작가의 방식은 오랜 고민에 대한 결론이다. “내가 이 시대를 다 감당하는 작가가 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시대의 이야기를 잘 하는 게 중요한 거죠. 그런 식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다 보면 한국 문학의 지층이 더 섬세하고 선명해지지 않을까요. 그렇게 현대 문학의 다양함과 건강성에 기여하면 좋겠어요.”

그가 뚝심 있게 지켜온 얇은 지층은 점점 강하게 희소성을 발하고 있다. 최종심에서 한 심사위원은 전성태의 소설을 두고 “한국 문학에서 다시 올 수 없는 최후의 무엇”이라고 평했다. 작가가 말하는 “최대의 콤플렉스”가 최대의 경쟁력이 된 것이다.

작가는 2년 전 모친을 떠나 보내고 올 겨울에 부친상을 치렀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점차 기억을 잃고 세상을 뜨기까지의 과정은 마지막에 실린 소설 ‘이야기를 돌려드리다’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러나 어머니가 유일하게 반응하는 소리가 있었다. “엄마!”하고 부르면 “오야”하고 대답했고 “밥 좀 줘”하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엄마와 밥은 마치 뇌에 저장된 기억이 아니라 가슴 같은 곳에 박히거나 뒤꿈치의 굳은살 같은, 기억과는 질적으로 다른 어떤 것 같았다.’

작가는 과거로 퇴행하는 어머니를 향해 애끓는 효심을 고백하는 대신, 어릴 적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들로 돌아간다. 백 년에 한 번 핀다는 대꽃,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날개 달린 산갈치. 어머니는 아들이 앓을 때마다 출처불명의 신비한 이야기들을 들려줬고, 교훈도 없고 인과도 배제된 이야기 속에서 작가는 죽음이 무서운 것만은 아니란 걸 깨닫는다. 이제 죽음을 앞둔 어머니 앞에 작가는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돌려 드린다. 그만의 천도재 (薦度齋)다.

막 두 번째 자화상을 끝낸 작가가 앞으로 독자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는 문예지에 연재 중인 근대 스포츠 영웅들의 이야기에 이어, 80년대 의문사를 당한 청년들의 부모 얘기를 구상 중이라고 했다.

“예전엔 좋은 작품 한 편 쓰려고 부단히도 노력했어요. 이젠 작품 한 편이 아니라 작가 인생 전체로 시야가 바뀌었습니다. 계속 갱신하고 때론 실패도 하면서 나이테처럼 뭔가 쌓아가다 보면 어떤 경지를 경험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앞으로 40년은 더 쓰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수상작 ‘두 번의 자화상’
수상작 ‘두 번의 자화상’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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