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호 작
두 눈 감고 두 발 모으고
불길로 밀려들어간 적이 있었다
가지런히 발 뻗을 때는
정지비행을 위해 한잠에서 깨는 시간이라고 해두자
눈 뜨면 천 길 낭떠러지
갸웃거리는 뾰족 부리는
그때 그 이야기를 물고 있다고 해두자
하늘을 밥그릇처럼 엎으며
먼 우주를 바다에 쏟아 넣기도 하지만
너는 돌아올 기색도 없이 떠났다
그러는 사이 세상은 한번 휙 돌아서
구름을 바꿔 쓴다
네가 돌아오는 길을 잃지 마라고
눈빛으로 하늘 구석구석을 쓸어 보지만
기가 막히게도 네가 먼저 거리를 둔다
한 생을 잊기 위해
열린 서랍을 한꺼번에 닫는 눈꺼풀
조금씩 흘리고 있던 먹이를 봉지째 툭 놓쳐버린다
이제 너로부터 듣는 말이 더 길어진다
시인소개 : 1964년 경북 경산출생으로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박사졸업 후 명지대 강사로 활동 중이다. 한국작가회의 회보편집위원장 및 예버덩 문학의집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시집으로 ‘아주 붉은 현기증(민음사)’ , ‘우울은 허밍(문학동네)’이 있다.
해설 : 김연창
사람들은 가끔 천 길 낭떠러지 혹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꾼다. 꿈을 꾼다는 건 욕망의 해소이며 불가능에 대한 희망이다. 때론 사람들은 외포리 갈매기처럼 하늘을 날아 보고픈 강렬한 희망이 인다. 하지만 희망은 곧 불가능에 대치하는 한낱 욕망임을 알아챈다. 더 가지려다 잃어버린 큰 봉지처럼 우리는 욕망을 쫓다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산다. 그리하여 우리는 삶은 지침을 또 추가하여 심장에 새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