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보육비 예산을 둘러싼 정부와 지방교육청 간 갈등 사태가 재연되고 있다. 전국 17개 시ㆍ도교육청 중 14개 교육청이 내년 예산안에 어린이집 보육비 예산을 한 푼도 편성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내년 예산 조달에 차질이 생길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어린이와 학부모에게 돌아가게 된다.
어린이집 보육예산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사업이다. 하지만 재원조달 방안을 고려하지 않고 전면 실시하는 바람에 차질이 빚어졌다. 정부는 어린이집 예산을 지방교육청에 내려 보내는 재정교부금에서 충당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9월에는 아예 교부금에서 어린이집 예산을 의무적으로 할당해야 한다는 내용의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제정했다. 반면 교육감들은 현 정부가 공약으로 추진한 만큼 교육교부금을 건드리지 않고 별도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교육청 예산은 교육부교부금이 전부인데 어린이집 지원 예산을 의무지출로 법에 명시해 놓으면 초ㆍ중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써야 할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진보성향 교육감이 대거 등장하면서 교육청 돈줄을 죄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억측마저 나돈다. 어린이집 예산을 둘러싼 갈등은 현 정권 들어 매년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에도 1조5,000억 원이 부족해 이 중 1조원은 지방채, 나머지 약 5,000억 원은 국고로 해결한 바 있다. 올해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내년 예산의 절반 이상인 2조477억 원이 부족하게 된다. 결국 지난해와 같은 방식으로 타협점을 찾겠지만 언제까지 임시방편으로 땜질처방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학부모들은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혼란에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예산이 없는 게 아니라 정부와 지방간에 누가 부담할 것인가를 두고 다툼하는 모습에 기가 막힌다. 맞벌이 등으로 아이들을 맡겨 둘 곳이 마땅치 않은 부모들은 또다시 어린이집 대신 유치원을 알아봐야 할 처지에 놓였다. 올해 초 보육료 대책을 촉구하며 연일 집회를 열었던 어린이집 원장들도 운영난을 걱정하고 있다.
정부가 먼저 이런 사태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해법을 찾아야 한다. 선거 때 표를 얻는 수단으로 이용해놓고 정권을 잡은 뒤에는 예산 책임을 지방에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하다. 보육 문제를 외면하고는 정부의 저출산 대책도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시ㆍ도교육청도 적극적으로 예산을 확보할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지방교육청의 불용ㆍ이월액 운용을 개선하면 최소한의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 정부와 시ㆍ도교육청은 애꿎은 학부모들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도록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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