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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우파도 ‘애국적 역사관 강조’ 교과서 손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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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우파도 ‘애국적 역사관 강조’ 교과서 손대 논란

입력
2015.11.1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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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교육위원회의 사회교과 수정에 대해 항의하는 시민들을 2010년 방송국 카메라가 촬영하고 있다.한국일보 자료사진
텍사스 교육위원회의 사회교과 수정에 대해 항의하는 시민들을 2010년 방송국 카메라가 촬영하고 있다.한국일보 자료사진

‘역사를 어떻게 게 가르칠 것인가’는 우리뿐 아니라 많은 나라들에서 논쟁거리다. 최근 미국도 사회 교과서 왜곡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겪고 있다. 공화당이 득세하고 있는 미 텍사스주 교육위원회가 자유시장 경제의 장점을 포함해 친 공화당적 시각을 사회과 교과서에 강화하기로 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역사교과서 논쟁과 유사해 관심을 끈다.

노예제를 ‘무급 노동자’로 왜곡

올 9월 텍사스주 휴스턴 남쪽 펄랜드 고등학교에 다니는 신입생 코비 버렌(15)은 수업 시간에 세계지리 교과서를 펼쳐보다 깜짝 놀랐다. 교과서 126페이지, 미국 지도가 그려진 한 섹션에 달린 이민에 대한 부연설명 때문이었다. 이 교과서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노예무역에 대해 설명하면서 1500년대부터 1800년대 사이 아프리카인들이 미국의 농장에 노예가 아닌 ‘노동자’로 이곳에 왔다고 적혀있었다.

분노한 그는 휴대폰으로 이 지도와 설명의 사진을 찍어 그의 어머니 로니 딘 버렌에게 보내며 “우리는 진짜 힘든 ‘노동자’였네요, 우리 얘기가 아닌가 봐요”라고 썼다.

미국으로 이주한 유럽인들에 대한 묘사가 흑인과 차별적인 것도 이들 모자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교과서 또 다른 페이지에는 유럽인들은 무급 고용계약제(indentured servants)로 미국으로 왔다고 적혀 있었던 것.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 역시 무급으로 일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교과서에서는 마치 흑인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은 것처럼 표현한 것이다. 코비의 어머니 딘 버렌씨는 “이것은 언어의 미묘한 뉘앙스를 조작해 역사의 중요한 장면을 삭제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딘 버렌씨는 자신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이 교과서의 내용에 대해 반대하는 영상물을 올렸다. 이는 널리 공유돼 200만건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했고, 흑인 인권 문제를 다루는 ‘블랙라이브매터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딘 버렌씨의 문제제기는 텍사스에서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민간 중심의 교과서 발행 정책이 시행되는 미국에서는 교과서 채택 권한이 연방 정부나 주정부가 아닌, 개별 교육청에 주어진다. 교육청은 주정부에서 자체법규에 따라 인정한 교과서들 중 어떤 책을 쓸지 고를 수 있고, 출판된 교과서 중 자율적으로 선택한다.

2010년 공화당 텃밭인 텍사스주의 교육위원회는 사회 교과과정 지침을 자본주의의 장점과 공화당에 친화적인 정치이념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대폭 개정하면서 새로 만들어진 교과서가 올해 가을 학기부터 공립학교에서 일제히 사용되고 있다. 흑인 노예를 ‘노동자’라고 표기한 문제의 세계지리 교과서 역시 이번 가을학기부터 적용된 새 교과서였다.

수정된 역사교과서가 내용뿐만 아니라 기술 방법에 있어서까지 논점을 흐리고 사실을 왜곡하는데 일조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지난달 23일 다트머스대 문장론 강사 엘렌 브레슬러 록모어는 뉴욕타임스에 새 교과서의 기술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실었다. 그는 텍사스주 공립학교 학생 500만명이 사용하기 시작한 새 교과서들의 일부가 “단어의 선택을 통해서뿐 아니라 문법을 통해서도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과서 집필자들이 문장을 어떻게 구성하고, 무엇으로 문장의 주어를 삼을 것이며, 동사는 능동태로 할 것이냐 수동태로 할 것이냐 하는 것들을 결정하는 방식에 따라 ‘노예제가 전부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실제 교과서의 문장들을 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 역사 교과서에는 “일부 노예들은 자신들의 주인들이 친절하게 대우해줬다고 말했다, 일부 노예 주들은 자신들이 투자한 재산(노예)을 지키려고 노예들에게 필요한 만큼의 음식과 옷을 제공했다, 그러나 가혹한 처우가 매우 흔했다, 채찍질, 낙인찍기, 그리고 훨씬 심한 고문, 이 모든 것들이 미국 노예제의 일부였다”라고 서술돼 있다.

록모어는 노예와 노예주라는 두 주체에서 노예는 구체적인 사람으로 명시된 반면 채찍질 등의 가혹한 처우를 한 주체로서의 농장주는 등장하지 않는 것을 지적했다. 록모어는 학교에서 문장론을 가르칠 때 명료하게 뜻을 전하기 위해 “가능하면 추상적 명사 대신 사람을 주어로 사용하고, 동사는 수동태대신 능동태로 쓰라”고 가르친다고 밝혔다.

텍사스주 교과서의 노예제 대목도 노예제의 ‘긍정적인 면’을 기술할 때는 사람 주어, 능동태 등 문장론의 원칙을 철저히 따르면서, 노예제의 야만성에 대해선 집필자들이 “온갖 흐리기 수법들”을 동원하고 있다는 게 록모어 주장의 요지이다.

논란이 커지자 교과서를 출판한 맥그로우 힐은 자사의페이스북 페이지에 성명을 게시해 노예무역에 대한 설명을 미국으로 ‘강제 이주’ 당했다고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인쇄된 배포된 책에는 수정된 내용이 담긴 스티커를 붙여 해당 설명을 덮기로 했다.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데이비드 레빈 맥그로우 힐 교육의 대표는 이 설명을 ‘실수’라며 사과했다. 그러면서 그는 역사해석의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해 교과서 검수자들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책을 출간하는 과정에서 회사 내ㆍ외부 다수 전문가들이 검토했고, 대중의 관점에서 읽을 수 있게 만들어는데, 당시 문제가 된 설명에 대해서는 아무도 우려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800페이지에 달하는 교과서 전체를 보면 노예제도의 문제를 왜곡하지 않으며 흑인을 납치해 노예로 삼은 역사에 대해서 수십개 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해명했다.

교과서에 성서 내용을 싣기도

텍사스의 수정 교과서는 일찍이 왜곡 논란을 예고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7월 ‘어떻게 텍사스가 남북전쟁 역사를 화이트워싱하는가’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텍사스의 수정된 교과서가 텍사스 학생뿐만 아니라 전국의 학생들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개정된 텍사스의 사회 교과에서는 미국의 헌법체제가 성경을 기반으로 완성됐다는 내용에 초점을 맞추면서 모세와 같은 성경의 인물을 비중 있게 다루도록 했다. 특히 논란이 됐던 부분은 남북전쟁과 관련된 것으로, 남북전쟁의 원인이 크게 지방주의, 주들의 권리, 노예제로 나뉘는데 노예제 보다는 지방주의와 주의 권리가 전쟁 발발에 중요한 요인인 것으로 강조하고 있다.

게다가 텍사스 교육위원회는 2010년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면서 노예제도를 부수적인 문제로 가르친다고 명시했다. 이에 대해 WP는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했을 때 노예제는 부수적인 문제가 아닌 가장 핵심 문제였다며 어떠한 진지한 학자도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전 사회 교과서 편집자로 현재 텍사스 프리덤 네트워크에서 일하는 댄 퀸은 개정된 교과서가 나올 때, “텍사스에서 발생하는 일은 단지 텍사스에만 머물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국가교육협회에 따르면 텍사스주 정부는 거의 매년 5,000만부의 교과서를 매입하는데, 이는 국가 전체의 교육 자료 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창조론을 일선 학교에서 삭제하기 위한 운동을 하는 활동가 잭 코플린은 지난해 잡지 아틀란틱에 전국의 교육구청이 “결함 있는 텍사스의 교육과정 기준을 충족시키도록 쓴 교과서를 구매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플린은 심지어 전 텍사스 교육위원회의 돈 맥레로이의 말을 인용해 그가 개신교의 지적설계론을 옹호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두번째로 큰 주인 텍사스에서 주 정부는 교과서의 가장 큰 구매자다. 그러다 보니 일선학교에서 교육위원회가 사전 승인하지 않은 교과서를 사용하는 것도 허용되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정부가 제안한 교과서를 구입하고 있다. 때문에 출판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대형 출판업체들은 정부 기준에서 벗어나는 교과서를 출판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WP는 “만약 출판사들이 학문적 무결성을 유지하기 위해 조금만 이익을 희생한다면, 그리고 만약 학교가 오로지 정직의 높은 기준을 충족한 책만을 구매한다면 좋을 것”이라며 “하지만 실제 부담은 학생들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결정하는 텍사스의 정책 결정자들에게 지워져야 한다”고 밝혔다.

비판적 역사인식 교육을 비애국적 역사라 공격

텍사스 역사 교과서 수정뿐만 아니라 역사 교육과 관련된 갈등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대학입학시험을 관리 감독하는 비영리단체인 칼리지보드가 대학입학자격시험(SAT) 시행이나 대학과목 선행이수제도(AP)의 평가 기준을 역사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높은 점수를 주는 방향으로 새롭게 수정하자, 일부 보수 성향 학자 단체에서 역사교육에 애국주의적 요소가 약해졌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칼리지보드가 “미국의 지도력을 지나치게 저평가하는 편향된 미국역사 해석을 유도한다”고 반발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 역시 지난 8월 같은 논리로 역사과목 AP 평가기준을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유명 미국 역사사회학자 짐 로웬은 “백인의 역사는 아마 백인 국가에 적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위대한 국가에는 부적합하다, 미국은 백인의 국가가 아니며 한번도 백인의 국가였던 적이 없다, 이제 우리는 백인의 역사를 포기하고 역사적 기록에 더 가깝게 기반한 더욱 정확한 역사에 찬성할 때”라고 말했다.

박소영기자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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