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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 손 벌리는 청년희망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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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 손 벌리는 청년희망펀드

입력
2015.11.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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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기부 방식 성과 미미하자 기업에 강제 할당 ‘준조세’변질

정부“5대 그룹 750억ㆍ금융권 500억”규모ㆍ시기 가이드라인 제시

일부 기업 해당 임원 동의 안받고 일률적으로 급여서 공제 사례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제안한 청년희망펀드가 기업들에게 강제할당 하다시피 한 기부금으로 조성돼 문제가 되고 있다. 펀드 출범 초기엔 사회 지도층, 공직자, 일반 국민의 자발적 참여로 기금을 마련한다는 취지였지만 기대만큼 성과가 나타나지 않자 기업들의 참여를 독려하면서 ‘준 조세’식 성금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다.

10일 정부 및 재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청년희망펀드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대기업에 기부액 규모와 참여 시기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부금 액수는 5대 그룹에 750억원, 금융권에 500억원이 할당됐고 개별 기업들과의 연락은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맡았다.

전경련은 기부금 할당을 부인했지만 여러 기업들이 전경련의 연락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재계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정부 모처에서 청년희망펀드와 관련해 ‘언제까지 어느 정도 규모의 참여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전경련에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전경련 모 부서에서 전화로 주요 기업들에게 이런 분위기를 전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경련은 이 같은 메시지를 근거가 남는 문서나 이메일이 아닌 전화로 구두 전달했다.

청년희망펀드에 기부금을 낸 모 재벌 회장도 최근 사석에서 기부 할당을 인정했다. 그는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자는 좋은 취지의 펀드여서 기업들이 참여하는 것이 옳다”면서도 “기업의 규모에 따라 내야 할 돈이 정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제할당 식 기부는 기업들의 불만과 부작용만 쏟아내고 있다. 기업 오너와 함께 임원들도 기부에 참여하고 있는데 일부 기업에선 해당 임원의 동의도 받지 않은 채 직급에 따라 일률적으로 기부금을 할당한 뒤 급여에서 이를 공제하고 있다. 모 그룹 임원은 “연봉의 일부를 떼어내는 것이어서 삭감이나 마찬가지”라며 “결코 기꺼운 마음으로 참여하지는 않았다” 고 말했다.

내부 반발이 커지자 해당 기업은 수당과 보너스 형식으로 임원들의 기부 공제액을 보전해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개인 재산이 아닌 기업 운영에 쓰여야 할 돈이 펀드에 투입되는 셈이다. 한 경제계 인사는 “대기업 회장들이 사재를 털어 기부하지만 오너라고 해서 현금 동원력이 큰 것은 아니다”라며 “자칫 회사 돈을 가지고 개인 명의로 기부할 가능성도 높은데 이런 편법을 걸러낼 장치가 없다”고 지적했다.

청년희망펀드는 지난 9월 박근혜 대통령이 개인재산 2,000만원을 내놓고 매달 월급의 20%씩 기부하기로 해 ‘1호 가입자’가 됐지만 이달 중순까지 공직자와 국민들의 ‘자발적’ 기부액은 60여억원에 그쳤다. 이 같은 상황 때문에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기업 기부를 받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기업에 할당을 한 게 아니냐는 것이 재계 관측이다.

기업들은 지난달 22일 와병 중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포괄적 위임 형식을 빌어 사재 200억원을 내놓고 임원진들이 50억원을 더해 총 250억원을 기부하자 약속이라도 한 듯 일사불란하게 기부 행렬에 동참했다. 실제 삼성(250억원), 현대자동차(200억원), SK(100억원), LG(100억원), 롯데(100억원) 등 재계 상위 5대 그룹이 약정한 기부액은 750억원이다. 상위 5대 그룹이 기부에 참여하자 GS(50억원), 포스코(40억원), 한화(40억원), 두산(35억원), 효성(20억원) 등도 기업 규모에 맞춰 기금을 내놓았다. 기업들의 대규모 기부로 이날 현재 청년희망펀드의 누적기부액은 606억원을 넘어섰다.

기업들은 정부 눈치 보기에 급급해 기부 할당제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정부 인허가 사업이 걸려 있거나 그룹 오너와 전현직 임원들이 재판 및 검찰 수사 대상이기도 하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청년희망펀드를 구체적으로 어디에 어떻게 쓸 지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할당을 통해 돈부터 내라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고민과 진단 없이 눈에 보이는 기금 조성으로만 흐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강조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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