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2년 11월 11일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신도ㆍ성직자 합동 교회총회(General Synod)가 열렸다. 현안은 20년 가까이 합의를 못 내던 여성 사제 서품 허용 여부였다. 5시간 반 격론 끝에 벌인 투표 결과는 ‘허용 찬성’. 딱 2표가 많았다. 450여 년 영국 성공회의 새로운 역사가 그렇게 시작됐다.
취임 2년차 조지 커레이 캔터베리 대주교는 찬성파였다. 표결 직후 그는 총회의 결정이 모두를 만족시키진 못하리라 밝힌 뒤 “여성 서품을 인정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 안에서 신의 사랑으로 우리가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주교가 교회 분열을 걱정할 만큼, 여성 사제 서품은 성공회의 뜨거운 감자였다.
그의 우려처럼 반대자들은 총회 결정에 순응하지 않았다. 켄트 대학 교목인 피터 젤다드 경은 총회 직후 “교구와 교구가 싸우고, 관구와 관구가 싸우고, 교구민이 교구민과 싸우게 만든 결정”이라고 성토했다. 존 메이저 정부의 여성 국무장관이던 앤 위드컴(Ann Widdercombe)은 “교회가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느라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을 거슬렀다”며 성공회 신앙 포기를 선언하기도 했다.(BBC, 92.11.12)
영국 성공회 교회법에 따르면 교회 수장은 영국 국왕이다. 총회 결정은 영국의회 교회위원회와 국왕의 승인을 받아 법이 된다. 그 절차를 밟아 여성이 서품된 것은 1994년부터였다. 초기 여성은 부제(deacons) 서품만 허용됐다. 부제는 세례와 결혼, 장례식은 집전할 수 있지만 성체배령과 성찬식 집전 권한은 없다.
영국 성공회의 사제직 성평등을 위한 진통은 이후로도 줄곧 이어져왔다. 성공회 최고위성직인 주교에 여성 서품 허용법안이 통과된 것은, 92년 오늘로부터 21년 뒤인 지난해 7월. 성공회 출범 480년 만이었다.

지난 해 12월 영국 성공회는 옥스퍼드 대 출신의 리비 레인(48) 사제를 첫 여성 주교로 승진 임명했다. 기혼자인 레인 주교는 남편과 동시 서품을 받은 성공회 최초의 부부 사제. 남편보다 먼저 승진한 레인 주교는 올 1월 요크 대성당에서 서품식을 갖고 맨체스터 스톡포트 교구 주교에 취임했다.

성공회는 가톨릭과 달리 독자성을 존중한다. 국가나 지역, 문화, 전통에 따라 여성 사제 서품을 인정하지 않는 곳도 있다. 세계 성공회 공동체(Anglican Communion) 사상 첫 여성 사제 서품이 이뤄진 곳은 홍콩 성공회로, 영국보다 50년 전인 1944년 첫 여성 사제가 탄생했다. 대한성공회에는 2001년 민병옥 사제가 부산교구에서 첫 여성 사제 서품을 받은 이래 18명의 여성 사제와 부제가 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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