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밝은 쪽보다 어둠 쪽으로 더듬이가 발달해 있어요. 자연스레 역사의 이면에 남은 사람들의 상처를 작품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시대의 아픔에 천착하는 미술가 안창홍(62)의 작품은 대부분이 익명의 인물화다. 그가 그린 사람들의 얼굴 위로 시대가 비친다. 그는 “역사는 기득권자가 노력한 것만 기록하고, 세상을 움직인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늘 안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 그가 본 한국 현대사는 상처투성이의 역사고, 현대인은 야만의 시대에 상처를 감당한 채 사는 사람들이다.
안창홍은 주로 옛 사진을 크게 인화한 후 그 위로 아크릴 물감을 덧칠하거나 캔버스 표면을 자르는 등 다양한 연출을 가한다. 옛 사진은 “고물상이나 사진 경매 등을 통해” 수집한다. 그렇게 그는 역사에서 잊혀진 사람들을 되살린다. 일제 때 끌려가 머리카락을 밀린 학도병, 기모노를 입은 젊은 여성, 1960년대 중학생 등이 주인공이다. 이들의 빛 바랜 사진 위로 날아다니는 나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적 연결고리이자 상처받기 쉬운 꿈을 의미한다.
2004년 부산비엔날레에서 첫 선을 보인 대표작 ‘49인의 명상’은 옛 사진관에서 발견한 낡은 필름에 담긴 증명사진을 크게 인쇄한 후, 물감으로 눈을 감겼다. 사진 속 주인공들은 어두운 삶을 살았지만, 눈을 감은 표정은 따스한 느낌을 준다. “눈 속에는 저마다 삶의 역경이 담겨 있어요. 눈을 감음으로써 이 사람들은 비로소 상처를 어루만지고 내면의 평화를 얻게 되는 거죠. 사진을 보시는 분들도 그 시절을 회상하고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작품을 준비할 때 그렸던 스케치나 연필화는 사진 콜라주보다 훨씬 거칠고 기괴하다. 민중미술이 유행한 1980년대를 거치면서 성장한 안창홍의 사회비판적 정서가 더욱 날카롭게 살아 있다. 1991년작 ‘나르지 못하는 새’에는 날개 달린 팔을 한 짝 잃어버려 불구가 된 사람이 그려져 있다. 1987년 민주화 체제 수립 이후에도 쟁취하지 못한 것이 남아 있다는 현실인식이 드러난다. 이 흐름은 15년 뒤에도 지속된다. 2005년에 그린 ‘사이보그의 눈물’ 연작을 보면, 얼굴에 상처가 난 사람들의 생기 없는 눈 아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인간 상실의 시대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겁니다. 거대 자본에 착취당하고, 본인 의지와 관계없이 조직 속에서 기계 부품처럼 굴러가는 거죠.”
충남 천안시 신부동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안창홍의 대규모 개인전은 그의 초기작부터 최신작까지 100여 점을 한 자리에 모았다. 미술작가로 인정받기 전인 고등학생 시절 그린 1973년작 ‘자화상’부터, 오물더미에 묻힌 아기를 연출해 찍은 2015년작 사진작품 ‘야만의 시대’까지.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안창홍이라는 한 작가가 생각을 끌어온 궤적이 보였으면 한다”고 했다. 그 궤적에서 나타난 세상은 여전히 야만투성이다. “왜 이런 그림을 그리냐고 질문한다면, 전 지금 세상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하겠어요.” 2016년 1월 17일까지. (041)551-5100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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