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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온이 낳고 턴아웃은 더 잘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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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온이 낳고 턴아웃은 더 잘 돼요”

입력
2015.11.10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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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온 엄마 아닌 발레리나로, 3년 만에 복귀하는 윤혜진

“2012년 고별무대가 은퇴무대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는 윤혜진은 요즘 안애순 국립현대무용단 단장에게 “(연습할 수 있게) 빨리 안무 알려달라”고 재촉한다고 했다. 최민영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부 4년)
“2012년 고별무대가 은퇴무대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는 윤혜진은 요즘 안애순 국립현대무용단 단장에게 “(연습할 수 있게) 빨리 안무 알려달라”고 재촉한다고 했다. 최민영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부 4년)

이렇게 잘 우는 취재원은 처음이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에서 2012년 세계 최정상의 컨템퍼러리 발레단인 모나코 몬테카를로에 화려하게 입단, 그 해 부상으로 귀국해 오랜 공백기를 가진 무용수 윤혜진(35) 얘기다. 일반에는 영화배우 엄태웅의 아내, 지온이 엄마로 더 잘 알려졌다. 모던발레‘카르멘’의 마담M, ‘신데렐라’의 요정과 계모 역할을 맡으며 카리스마 강한 춤과 연기로 이름을 알린 그가 발레가 아닌 현대무용으로 다시 무대에 선다. 12월 8일부터 13일까지 국립현대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 ‘춤이 말하다’에서 김영숙(한국 전통무용), 김설진(안무가), 예효승(현대무용)과 함께 출연하게 된 것. 5일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그는 3년간의 복귀 과정을 말하며 연신 눈물을 글썽거렸다.

“집에서 국립발레단 연습실까지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려요. 오전 9시쯤 출발해 11시 후배들이랑 클래스(발레 기본 동작 연습) 하고 오후 1시 반쯤 끝나 집에 가면 3시에요. 발레단 연습이 있으면 거의 매일 나와요. 수십년 했던 거라 동작 순서야 다 아는데, 같이 해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긴장하니까요.”

출산 후 늘어난 몸무게와 늘어진 배로 산후우울증에 걸렸던 윤혜진은 모유 수유가 끝난 2013년 12월부터 ‘관리’에 들어갔다. 다이어트와 근육운동을 하고, 동네 발레학원을 빌려 혼자 기본기를 다졌다. 출산 전 ‘국내에서 몸 라인이 가장 아름다운 무용수’란 수식어가 따라다닌 그에게 “양 무릎이 닿지 않는” 경험은 충격이었다고. “부상과 출산은 확실히 다른데, 일단 골반이 벌어지고 허벅지가 일자로 안 붙어요. 봉 위에 다리 얹으면 덜덜 떨리고. 지온이 낳고 ‘끝났다’고 생각했죠.”

윤혜진은 “자신 있는 춤이 죄다 저작권 걸린 현대안무가 작품이라 멘붕에 빠졌다”면서도 “오랜만에 서는 무대인데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벅차다”고 말했다. 최민영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부4)
윤혜진은 “자신 있는 춤이 죄다 저작권 걸린 현대안무가 작품이라 멘붕에 빠졌다”면서도 “오랜만에 서는 무대인데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벅차다”고 말했다. 최민영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부4)

이를 악물고 연습한 그에게 기회는 빨리 왔다. 5개월여를 혼자 연습한 지난해 4월, 일면식도 없는 강수진 단장에게 발레단 연습실을 써도 되는지 물어봤고 “내일부터 당장 나오라”며 허락을 받았다. “연습 나온 지 얼마 안 돼 강 단장님이 10월 초연하는 ‘봄의 제전’ 주역을 제안하셨어요. 그 작품이 일반적인 클래식 발레랑 다른 모던발레라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곧 아버지인 원로배우 윤일봉씨가 전립선암 말기 판정을 받으며 복귀는 무산됐다. 그는 “온종일 연습에만 매달려도 모자란 때에 책임감 없이 혼자 심란해하면서 발레단 공연을 망칠 수는 없었다”며 “(암 판정 후) 바로 거절했고, 아버지 방사선 치료가 차도를 보인 후에 다시 양해를 구해 연습실에서 1년여 클래스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혜진은 “애 낳고 나서 턴아웃(다리를 양 옆으로 벌리는 발레 동작)은 더 잘 된다”며 깔깔 웃었다. 오전 연습 후 후배들이 각자 배역 맡은 작품 리허설에 들어가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음악만 들어도 미칠 것 같아서” 2012년 국내 고별공연 이후, 그는 3년간 무용 공연을 보지 못했다.

국립현대무용단 ‘춤이 말하다’로 3년 만에 복귀하는 발레리나 윤혜진 인터뷰. 최민영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부 4년)
국립현대무용단 ‘춤이 말하다’로 3년 만에 복귀하는 발레리나 윤혜진 인터뷰. 최민영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부 4년)

‘춤이 말하다’에는 이런 그의 고백과 춤이 곁들여진다. 2013년 처음 무대에 올려진 이 공연은 매년 다양한 분야의 무용가들이 출연해 춤과 이야기를 통해 동시대의 무용을 되짚어보는 렉처 퍼포먼스다. 객석 점유율 102%를 달성하는 국립현대무용단 대표 레퍼토리로 쟁쟁한 현역 무용가들에게도 꿈의 무대로 꼽힌다.‘유명세로 너무 쉽게 큰 무대에 서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우려에 대해서는 “저는 신인이 아니다”라는 말로 선을 그었다.

“제가 무대에 다시 서고 싶은 이유는 옛 명성을 되찾겠다거나 테크닉 좋았던 예전 춤을 다시 추겠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지금 무용수들이 하지 못한 경험을 했고 그런 경험을 통해 저만이 출 수 있는 춤이 있다면, 그런 춤을 추고 싶어요. 클래식발레는 만족할 만큼 했어요. 이제는 그보다 더 자유로운 춤을 추고 싶어요.”

(02)580-1300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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