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0일 공개석상에서 사실상의 ‘진박(진짜 박근혜 사람) 판정론’을 제기하면서 여권은 온종일 술렁였다. 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19대 현역의원들의 공천을 주도한 데 이어 20대 ‘예비 배지’의 공천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로 판단해서다. 비박계에선 박 대통령이 총선을 넘어 대선까지 자신의 뜻대로 구도를 짜려는 것 아니냐는 격앙된 반응도 나왔다.
여권 인사들은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박 대통령의 발언을 ‘총선에서 내 사람을 뽑아달라’는 메시지로 해석했다. 특히 그 메시지가 여권의 심장부이자 박 대통령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대구ㆍ경북(TK)을 향해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한 여권 관계자는 “배신하지 않을 진짜 내 사람을 선택해달라는 의미”라며 “TK에서 ‘진박 신인’들이 대거 당선되게 하고 수도권에선 청와대 참모나 각료 출신 인물들을 내보내 자신의 당내 기반을 확고히 다지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박 대통령이 유승민 정국 때의 ‘배신의 정치 심판론’에 이어 진박 판정론까지 주장하자 비박계는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였다. 한 중진의원은 “‘진박’을 선택하고 ‘비박’은 내쳐달라는 의미 아니냐”며 “국민을 무시한 선거개입 발언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한 의원은 “도가 지나치면 역풍이 불게 돼 있다”고 경고했다.
그간 공천 문제로 청와대ㆍ친박계와 맞서온 김무성 대표 측은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내년 총선을 거치며 당내 진용이 진박을 주축으로 짜여질 경우 차기 대권 구도에서 비박계를 기반으로 한 자신의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로선 대놓고 박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삼기도 쉽지 않다. 김 대표는 이날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사실 새누리당 내 ‘공천 룰’은 언제든 극한 대립으로 치달을 수 있는 휴화산이다. ‘TK 물갈이’를 통해 진박 신인의 대거 진출을 바라는 친박계는 당원들의 의사를 50% 반영하는 현행 룰을 선호한다. 반면 김 대표 측은 일반 국민 여론조사의 반영 비율을 최대한 높이자는 입장이다. 공천 룰을 둘러싼 양측의 이견은 ‘총선 이후’ 여권 내 권력지형과 맞닿아 있다.
당내에선 양측이 ‘컷 오프 카드’로 접점을 찾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수도권에선 박심(朴心)이 통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친박계로선 컷 오프로 현역의원을 손쉽게 정리하길 바랄 것”이라며 “김 대표와 친박계 간에 컷 오프와 비례대표 공천권을 두고 ‘딜’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김지은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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