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7일과 8일 이틀 동안,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단 이틀 동안 열린 독립출판사들의 행사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이틀 동안 약 1만3,000명이 몰렸다. 2013년에 5,000명, 지난해 8,000명에 비교하면 놀라운 성장세다.
180여 개의 독립출판사와 잡지를 발간하는 동인(同人) 모임, 개인 자격으로 참여해 출판물을 내놓은 작가들이 ‘직접 판매 부스’를 설치하고 구매자들과 만났다. 과거에 발행해 구하기 힘든 잡지와 전시도록, 자료집 등이 대거 나와 구매욕을 자극했다. 사진아카이브연구소는 2012년부터 14년까지 진행한 ‘서울사진축제’ 도록을 내놨고 프로파간다 프레스는 2007년부터 발간한 그래픽 디자인 전문지 ‘그래픽’의 과월호를 판매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맞춰 새 잡지를 발행한 그룹도 있었다. 전형적인 소설을 거부하는 문인 그룹 ‘서울생활’은 문학잡지 ‘아날리얼리즘’의 첫 권을 공개했고, 만화에 정통 미술 문법을 첨가한 그래픽 노블 잡지를 표방한 모임인 한타스도 ‘그렇게 추웠던 날’ 창간호로 활동 개시를 알렸다.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 작가들은 단편으로 엮은 소책자를 내기도 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독립출판을 시도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중심축이 되고 있다는 증거다.
관람객들은 주로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 서비스에서 화제의 부스들을 미리 확인하고 장터에 나섰다. 김영희(27)씨는 “‘유어마인드’ 부스에서 사전공개한다는 선우훈의 만화 ‘데미지 오버 타임’의 단행본을 확인하기 위해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찾았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이날은 한 명의 트위터리안으로 전시장을 찾아 ‘아날리얼리즘’ 구매를 ‘인증’했다. 그는 “다양하고 창조적인 작품과 작가들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 좀 더 자주 열렸으면 좋겠다”는 글을 남겼다.
2009년부터 시작해 7회째를 맞은 이 행사는 소규모로 제작되는 책과 잡지, 문구, 음반의 시장이다. 서교동 인더페이퍼 갤러리에서 시작한 이 행사는 논현동 플래툰 쿤스트할레, 상수동 무대륙, 한남동 NEMO를 거쳐 올해 처음으로 사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성공은 전통 유물로 여겨진 종이책이 예술가들의 미적 실천의 장으로서 재발견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독립출판계’도 형성되고 있다. 노르웨이 예술출판 및 서점인 ‘토피도 프레스’ 부스를 개설한 엘린 올레우센은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통해 한국 예술출판계의 열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오슬로에서 비슷한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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