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가 다시 휘청거리고 있다. 일본의 만성적 경기침체를 종식시키겠다며 등장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집권한지 3년이 다돼가지만 아베 총리의 경제 부흥책인 아베노믹스의 동력이 차츰 약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동안 아베노믹스 덕분에 일본경제는 살아나는 모양새가 분명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각종 경제지표들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등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우선 일본은 2분기 경기 후퇴를 경험한 뒤 3분기에도 생산부문이 추락한 징후들이 포착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단 중국경제 추락이 가속화하면서 일본에도 파장이 옮겨오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 동안 중국의 공장들이 일본 기계제품을 많이 수입해왔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지난해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경고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소비세 인상이 일본인의 소비심리를 다시 위축시키고 말았다.
세 번째 화살, ‘성장전략’에서 문턱에 걸린 아베노믹스
뉴욕타임스(NYT)는 아베노믹스가 추진력을 일어가는 근원적인 문제로 ‘성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지목했다. 당초 아베노믹스는 금융완화, 재정지출 확대, 성장전략 등 3개의 화살로 이뤄졌다. 첫 번째 화살인 금융완화는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다고 후한 점수를 받았다. 엔저효과로 기업들의 수익성은 개선돼 숨통이 트였다. 두 번째 화살도 일시적인 부양효과를 냈다. 대규모 공공투자를 통해 지난해 말 기준 일본의 실질 GDP성장률은 1.5%까지 상승했다. 실업률도 같은 기간 3.4%로 낮아졌다.
이 때문에 한때 ‘잃어버린 20년’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희망이 생겼으나, 세 번째 화살인 성장전략에서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벽에 부딪히게 된 것이다. 지금 일본경제의 실질성장률 수준은 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도 1990년대 중반 수준과 비슷한데 이는 노동력 축소가 기본 원인이다.
골드만삭스의 일본경제 수석연구원인 나오히코 바바는 “해외투자자들도 아베노믹스에 대해 서서히 실망감을 느끼고 있다”고 경고음을 울렸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해외투자자들의 관심이야말로 일본의 주가를 상승시킨 원동력이었다. 주가상승은 아베노믹스의 대표적 성과다. 비록 다른 글로벌 주식시장 상황과 함께 최근 수개월간 고전했지만 니케이225 지수는 아베 총리가 집권한 2012년과 비교해 2배 이상 급상승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지난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마이너스성장을 했을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블룸버그 최신 조사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 3분기 GDP가 0.3% 감소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베노믹스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장전략이 제대로 추진되려면 규제완화나 노동시장 개혁 등 ‘고통을 수반하는 개혁’이 절실함에도 이 부분에 취약하다는 평가가 주류다. 세 개의 화살이 하나로 뭉쳐야 잘 부러지지 않을 터인데 마지막 화살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모습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세 번째 화살의 적중여부는 지금 당장 판단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세금을 내리고 규제를 완화하는 등의 구조개혁 성과는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 수년 후 결과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물가상승률 2% 달성 4년 이상 늦춰져
아베노믹스에서 중앙은행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일본은행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총재는 7년전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가 글로벌경제위기 발생과 함께 시도했던 방식과 유사한 ‘양적완화’정책을 지금까지 추구하며 아베노믹스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일본은행은 지난달 30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시장이 예상했던 추가 양적완화를 결정하지 않았다. 연간 80조엔 규모의 자금을 공급하는 현재의 금융완화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은행은 올해 물가상승률(신선식품 제외) 전망치를 당초 0.7%에서 0.1%로 크게 낮췄다. 내년 물가상승률도 1.9%에서 1.4%로 낮춰 잡았다. 올해와 내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전망치도 각각 1.7%, 1.5%에서 1.2%, 1.4%로 떨어뜨렸다. 이에 따라 2년내 2% 물가상승률 달성을 목표로 2013년 4월 대대적인 양적완화에 돌입했던 일본은행의 디플레이션 탈출시기는 최소 2배 이상 긴 4년이상 늦춰질 수밖에 없게 됐다. 아베노믹스의 주요 축인 양적완화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 논란이 커지고 있는 이유다.
중앙은행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은 엔화가치 저하를 유도하고, 이는 해외에 수출하는 일본기업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일본의 무역파트너 국가들에겐 매우 불쾌한 일이 된다. 또 일본 국내소비자들과 각종 부품을 수입해야 하는 중소기업들에겐 구매력 저하로 인한 고통의 악순환이 발생한다. 결국 아베노믹스가 일본의 수출을 주도하는 일부 대기업들에게만 혜택이 주어져 총체적인 일본경제 살리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반발을 낳고 있다.
“5년후 GDP 600조엔으로”무모한 공언
아베 총리는 지금까지 야심적인 약속을 남발해왔다. 최근엔 2020년까지 ‘1억 총활약 시대’를 열기 위해 일본경제의 GDP를 600조엔으로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침체된 일본경제가 불과 5년 후인 2020년까지 이를 어떻게 성과를 달성할지 구체적 청사진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한 공언은 원래부터 아베노믹스의 특징이었다. 일본이 안고 있는 ‘만성적 불황심리’를 없애보려는 고육지책이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가 자민당 총재 연임 기자회견을 통해 ‘희망을 만들어내는 강한 경제’‘꿈을 엮어내는 육아지원’‘안심하고 지속되는 사회보장’을 새로운 3개 화살로 제시하자, 오히려 아베노믹스에 대한 근본적 신뢰가 흔들리는 모습이다. 3개 화살은 구체적으로 ▦GDP 600조엔 달성 ▦출생률 1.8의 실현 ▦간병분야 이직률 제로가 구체적 목표다. 그러나 일본경제동우회의 고바야시 요시미쓰(小林喜光) 미쓰비시 케미컬 홀딩스 회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600조엔은 터무니없는 수치라고 본다, 정치적 구호 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냉소했다. 2014년 기준 487조6,000엔인 GDP를 2020년까지 600조엔으로 확대하기 위해선 연평균 명목 경제성장률이 3.5%가 돼야 하지만 과거 10년간 일본경제의 명목성장률은 -0.32%였다. 2012년 이후 2년간도 1.28%에 불과했다.
GDP 규모를 600조엔으로 늘리겠다는 것은 기업들의 투자확대가 없다면 불가능한 목표다. 이 때문에 아베 총리는 지난 5일 열린 제2차 민간경제회의에서 “다음에는 산업계가 구체적인 투자확대의 전망과 과제를 보여줘야 한다”며 기업들의 투자확대를 압박했다.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경제재생장관도 “사상 최대의 재원이 있는데 투자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경영판단 잘못”이라고 기업들을 압박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아베 정권이 기업 내부유보를 투자로 돌리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며 하지만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바로 불안한 아베노믹스가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일본 기업들은 아베 정권의 거듭된 임금인상 요구에 이어, 회사 경영까지 개입하려 한다며 강압적 자세에 반발하는 분위기다.
보육원에 들어가지 못하는 대기 아동수를 없애겠다는 두 번째 화살은 육아지원을 통한 출산율 회복이 목표로, 재정투입이 필요하지만 막대한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일본으로선 쉽지 않은 과제다. 세 번째 화살은 고령의 부모를 간병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 근로자가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현상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 역시 복지확충과 사회보장 재정지출의 팽창억제란 상반된 과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결국 기존에 제시한 3개의 화살이 제대로 목표에 적중하지 않자, 서둘러 새로운 목표를 내세워 실패를 감추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은영 한국무역협회 도쿄지부장은 “물가는 일본은행이 올리겠다고 하지만 정부측은 당분간 내버려둬도 좋다는 분위기”라며 “일본정부는 화살 2개로 잘 나가고 있다지만 성장과 관련해선 지금까지 도대체 뭘 했느냐는 비판이 일본 내 많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안보법 국회통과 이후 나온 새로운 3개 화살은 진지한 경제정책이라기 보다는 지지 회복용 정치구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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