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이라면 잊거나 묻어버리고 지나가는 과거의 일, 언행, 사건 등에 관해서 격렬하고 끈질긴 증오와 원한의 감정을 남다르게 질질 끌면서 남겨두고 있는 상태, 또 바로 그 남겨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급작스럽게 터뜨리는 상황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원래 뜻은 ‘일의 맨 나중이나 끝’ 혹은 ‘어떤 일이 있은 바로 뒤’였으며 비교적 중립적인 뉘앙스다. 요즘은 ‘뒤끝 작렬’이라는 관용적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다. ‘뒤끝 작렬’은 뒤끝이 있는 사람이 드러내는 볼썽사나운 작태를 풍자하거나 비꼬면서 유머러스한 공감을 나누고자 할 때 주로 젊은 세대 화자들에 의해 사용된다.
뒤끝은 다소간에 의미 중첩을 갖는 어휘다. 역전앞, 처가집, 족발, 계집년, 사내놈 등과 비슷한 언어 심리에서 만들어졌다. 젊은 세대의 유행어 중에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라든가 ‘킹왕짱’ 등의 표현이 이러한 어휘적 동의중복 현상을 보여준다.
한국어 ‘뒤끝’에 직접 대응하는 낱말이나 표현을 유럽어나 일본어, 중국어 등에서 찾아내기가 힘들다. 앙심, 원한, 유감, 악감정, 반감, 적의, 적대감, 분함, 억울함 등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로 grudge, animosity, resentment 등이 있기는 하지만, 이 어휘들은 그러한 감정 상태만을 가리키는 것일 뿐이지 한국어에서와 같은 미묘한 뉘앙스를 나타내고 있지는 못하다.
영어 resentment는 불어 르상티망(ressentiment)에서 파생된 말인데, 어원적으로는 어떤 감정 상태(sentiment)가 반복되거나 강화되면서(re) 지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을 애용했던 니체는 르상티망을 노예 등과 같은 소위 아랫것들이 사로잡힌 질투 내지는 복수의 심리구조, 또 더 나아가서는 여기서 형성된 도덕적 반란의 멘탈리티로 보았다. 니체는 심지어 예수나 바울의 가르침조차도 일종의 르상티망에서 생겨난 것으로 해석했다.
고전 그리스 서사시 ‘일리아스’에서는 아가멤논의 교만(hubris)이 불러일으킨 아킬레우스의 분노(menis)가 이야기 전체를 끌고 가는 모티프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그리스 군의 연속적인 패전과 역병 등을 낳는데, 나중에 아킬레우스는 분노를 풀어버리고 그리스 군을 승리하게 만든다. 반면, 셰익스피어 ‘리어왕’에서 비극을 낳은 원인은 독선과 아집으로부터 생긴 분노였다. 결국 미쳐버린 리어왕은 죽은 막내딸 코딜리어를 안고 슬픔에 몸부림치다가 후회하며 죽는다.
한국 사람들 대다수는 속에 있는 말을 적절한 기회에 서로 쏟아내서 감정적 응어리를 풀어버림으로써 뒤끝을 남기지 않는 게 좋다고 여긴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 ‘뒤끝 작렬’의 전범을 보이고 있는 분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전현직 국회의원들인 이정희, 정의화, 김무성, 이종걸, 유승민 등은 박 대통령이 시전해 낸 ‘뒤끝 작렬’을 몸소 처절하게 겪은 바 있거나 겪고 있는 중이다. 혈액형 성격설에 의하면 ‘강한 뒤끝과 집착’을 보이는 것이 A형이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B형인 박 대통령 혈액형을 염두에 두면 그 성격설은 틀린 게 아닌가 라는 합리적 의심을 낳는다.
초지일관해서 ‘뒤끝 작렬’을 보여주는 것에 대해, 그것은 일종의 ‘편집성 인격 장애’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문제는 ‘뒤끝 작렬’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뒤끝 작렬’이 ‘아몰랑’과 결합하는 데 있다.
그런데 ‘아몰랑’은 유음 ‘ㄹ’이 두 개나 들어가며 밝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 양성 모음 ‘ㅏ’와 ‘ㅗ’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소리 자체만으로는 매우 귀엽고 좋은 어감을 준다. 그래서 내 정치 취향으로는 굳이 박 대통령에게는 쓰고 싶지 않은 단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박 대통령은 국가의 주요 현안에 대해서, 또 그에 대한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에 대해서 ‘아몰랑’만을 외쳐 왔다. 박 대통령이 ‘뒤끝 작렬’에 몰두하기보다는, 경제 민주화 및 국민 대통합 등과 같은 애초의 약속을 지켜내는 ‘반전녀’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이는 나만이 아닐 것이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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