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청석 점령하고 “기자냐” 신분 추궁
효성 “법정이 작아서 생긴 일” 해명
검찰, 징역 10년ㆍ벌금 3000억 구형
9일 오후1시 서울중앙지법 509호. 효성 직원들로 추정되는 검은 양복 차림의 남성 수십명이 아직 문도 열리지 않은 법정 앞에 모여 들었다. 1시간 뒤 예정된 ‘회장님’의 결심 공판을 보기 위한 것. 모 케이블 방송사 직원은 재판 방청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가 자신을 효성 직원이라고 소개한 이로부터 “기자냐” “재판을 보러 온 거냐”는 추궁 아닌 추궁을 들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 최창영) 심리로 열린 조석래(78) 효성그룹 회장의 횡령ㆍ배임 등 혐의 결심 공판에서 효성 측의 ‘법정 알박기’가 논란이 됐다. 38석의 법정은 효성 법무팀과 홍보팀 직원들과 경영진, 효성 측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직원들로 가득 찼다. 효성 관계자들보다 늦게 온 기자들과 일반 방청객에겐 불과 몇 석 만이 허락됐다. 그룹 총수 재판은 적지 않지만, 직원들이 1시간 가량 대기하다 방청석을 채워 앉는 모습은 이례적이었다.
이들은 재판부의 ‘방청석 협조 요청’에도 요지부동했다. 재판 예정 시간인 오후2시가 지나면서 방호원들은 재판부의 지시에 따라 방청객의 신분을 확인, 취재진과 일반 방청객을 위해 좌석을 양보해달라 요청했다. 하지만 검정 양복차림의 한 남성은 자신을 “회사(효성) 직원”으로 소개하면서도,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재판 시작이 계속 지연되자 법정 안의 검사가 “(조석래) 회장님이 말씀하셔야 들으실 거 같은데”라고 말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효성 측 변호인이 “기자분들 앉으셔야 되니까 자리 좀 빼달라”고 얘기하면서 방청석이 정리됐고, 재판은 예정 시간을 12분 지나서야 시작됐다. 직원 부축을 받고 나타난 조 회장은 어수선한 분위기에서도 피고인석에 앉아 고개를 떨군 채 들지 않았다.
효성 측은 “직원은 15명뿐이었다”며 “법정이 작아서 생긴 일이다. 재판 때마다 늘 자리가 부족했다”고 해명했다.
이날 검찰은 분식회계 5,000억여원, 조세포탈 1,500억여원, 횡령 680억여원, 배임 230억여원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회장에게 징역 10년에 벌금 3,000억원을 구형했다. 함께 기소된 장남 조현준(46) 사장도 징역 5년에 벌금 150억원을 구형 받았다. 조 회장은 최후진술에서 “외환위기 당시 회사와 임직원들을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고의성이 전혀 없었다. 사익을 추구한 바가 없으며 오히려 살을 깎는 노력으로 기업가치를 높여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며“검찰이 당시 특수한 시대적 상황에 대한 몰이해에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향후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관진기자 spiri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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