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보건법 허점 뒤에 숨죽인 정신질환자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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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보건법 허점 뒤에 숨죽인 정신질환자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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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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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정신병원 환자유치 안간힘… 싸구려 약 먹이며 장기입원 유도

타인에 의한 정신병원 강제입원을 허용하는 정신보건법이 정신질환자들의 인권유리의 법적 도구로 이용되고 있어 비판 여론이 거세다. 철제문으로 굳게 닫혀 있는 한 정신병원 병동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타의(他意)에 의한 정신병원 강제 입원을 허용하는 ‘정신보건법 제24조(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가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인권 유린의 법적 도구로 이용되고 있어 거센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정신보건법은 보호의무자 2명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명의 동의로 정신질환자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환자를 폐쇄병동 등에 장기입원시킬수록 수익이 커지는 병원들의 얄팍한 셈법도 정신질환자들의 인권 침해를 부추기고 있어, 법과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의료계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2013년 서울정신보건지표 자료에 따르면 정신병원에 입원한 국내 정신질환자의 73.5%는 자의가 아닌 비(非)자의입원(강제입원)이다. 정신질환자의 다수가 가족 간 분쟁에 휘말려, 또는 가족 구성원 중 일부의 잘못된 판단 등으로 인신구속 상태에 있는 것이다. 더구나 정신병동 입원자의 10명 중 7명이 폐쇄병동에 격리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정신보건법이 정신질환자의 폐쇄병동 행(行)을 손쉽게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보건법은 환자가 입원한 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명의 동의만으로 이를 가능토록 하고 있다. 다수의 병원들이 수익 올리기에 매달리고 있는 현실에서, 이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인 것이다.

강제 입원에 따른 정신질환자들의 고통과 피해의 정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정신병원은 치유의 공간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사회적 격리를 위한 수용소”라는 말이 돌고 있을 정도다. 폐쇄병동으로 보내진 이들은 대부분 철창이 처진 폐쇄병동의 좁은 공간에서 조현병 우울증 조울증 알코올중독자와 함께 지낸다. 김원영 국가인권위윈회 장애차별조사2과 조사관은 “일부 대형정신병원을 제외하고는 시설이 열악하다”면서 “폐쇄병동은 치료보다는 이들을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공간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했다.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병원이 아니라 수용소인 곳이 많다”면서 “음식이나 시설은 형편없고 격리실 바닥에 똥, 오줌을 싸는 환자도 봤다”고 했다.

‘사회적 죽음’ 부르는 정신보건법 24조

단 한 번이라도 폐쇄병동에 다녀온 정신질환자들은 정신보건법 제24조를 ‘장기입원법’이라 말한다. 또 정신질환자들은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사람들을 가르켜 ‘생존자’라고 부른다.

조현증을 앓고 있는 40대 후반 여성은 “서른 살에 지방 정신병원에 입원해 10년 만에 밖으로 나왔다”면서 “입원에 동의한 엄마와 언니가 후환이 두려워 퇴원을 거부했고, 퇴원 하면 다른 병원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이 여성은 지난해 사망한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정신질환자들의 평균 재원기간은 247일로 세계 최장이다. 스페인 18일, 독일 24.2일, 이탈리아 13.4일, 프랑스 35.7일, 영국 52일 등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염 변호사는 “정신질환자가 되면 의사결정권도 박탈당하고, 정신병원에 수시로 강제입원을 당해도 어쩔 수 없다”면서 “정신보건법 제24조의 힘이 너무나 막강하다”고 말했다.

강제입원 후 6개월이 지나서야 퇴원 여부를 가리는 계속 입원심사도 문제다. 김원영 조사관은“입원 후 6개월이 경과한 후 정신보건심판위원회가 퇴원 여부를 판정하는데 폐쇄병동에 갇혀있는 환자들이 청구할 리 만무”라면서 “환자의 청구가 없어도 환자 상태가 호전되면 퇴원이 가능하도록 정신보건심판위원회가 자동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도 입원 6개월 후 퇴원 여부를 결정하는 계속 입원심사를 최소 3개월 정도로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익명의 보건관련단체 활동가는 “병원차원에서 보면 환자는 곧 수익이라 치료가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환자를 오래 잡아두고 싶을 것”이라면서 “환자 퇴원을 거부하는 가족과 장기치료를 통해 수익을 얻으려는 병원이 충분히 환자의 퇴원을 차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유엔(UN)장애인권리위원회는 지난해 9월 한국의 장애인권리협약 이행사항과 관련한 최종심의보고서를 통해 정신보건법에 담고 있는 강제입원에 관련된 조항 폐지와 헌법 제12조에 적시한 적법절차의 보장을 권고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12조 1항에서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지며,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ㆍ구속ㆍ압수ㆍ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ㆍ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고 못 박고 있다. 정신질환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일부 정신병원들의 비뚤어진 영리주의도 정신질환자의 장기입원을 부추기고 있다. 폐쇄병동을 운영하는 정신병원에서 근무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폐쇄병동에 입원하는 정신질환자의 대부분은 의료급여 환자”라면서 “정부에서 이들 환자의 입원비를 보조하고 있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환자가 오래 입원하면 할수록 이익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외래치료를 하는 것보다 입원치료를 하는 것이 유리한 의료수가 구조의 병폐가 정신질환자들의 장기입원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익명의 정신병원 관계자는 “병원에서는 최소한의 자본과 노동을 투입하되 가능하면 환자가 신속히 회복되지 않고 오래 병원에 머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했다. 10년 넘게 폐쇄병동에서 지낸 한 환자는 “10년 동안 낫지도 않는 싸구려 약을 먹고, 의사는 어쩌다 회진 때 만났다”고 했다.

정신질환자들이 병원에서 사회복귀 직업훈련을 받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환자의 상품화, 노숙자를 정신질환자로 둔갑도

병상회전율을 높여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병원들의 꼼수도 정신질환자들을 울리고 있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대학병원에서 치료가 덜 끝난 환자를 병상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퇴원을 강행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며 “대학병원에서 한 달 이상 입원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 결국 부실한 정신병원으로 환자들이 이동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신보건 전문가들은 “OECD 회원국 중 유독 한국에서만 정신병원 병상수가 늘고 있다”면서 “병상수 증가는 장기입원자 양산과 함께 심각한 인권문제를 발생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정신보건통계현황집에 따르면 2013년 기준 1980년 2,238병상에 불과했던 국내 정신의료기관 병상수가 2013년 8만3,001병상으로 37배나 증가했다. 염 변호사는 “2009년 기준으로 정신보건사업예산으로 책정된 750억원 중 732억원이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시설에 지원됐다”면서 “정부가 정신질환자들을 사회와 차단된 정신병원에서 관리하도록 정부예산을 지원하는 견고한 카르텔을 끊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08년 개정 이후 지금껏 단 한 번도 오르지 않은 정신질환 의료급여 환자 정액수가도 정신질환자 치료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신질환도 다른 질환처럼 초기치료가 중요하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특히 조현병의 경우 초기에 치료가 될 경우 질환개선을 도모할 수 있지만 정신질환 급여환자당 치료비가 낮게 매겨져 효과가 좋은 약을 놔둔 채 값싼 약을 처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폐쇄병동 입원환자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의료급여 환자 치료가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증상 개선은커녕 약제에 대한 내성만 잔뜩 키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박한선 성안드레아 신경정신병원 과장은 “의료급여 정액제 상한만 2배로 올리면 상당수의 환자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치료를 받고, 일부는 사회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질환자가 상품화되다 보니 웃지 못할 해프닝도 발생하고 있다. 겨울철 노숙자들이 정신질환자로 둔갑해 폐쇄병동에서 기거하기 때문이다. 김원영 조사관은 “겨울철 서울역 등 노숙자 쉼터나 센터에 있던 노숙자들이 민간응급구조대의 제의를 받아 자의입원 형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쉽게 우울증 진단을 받고 의료급여 대상자로 분류돼 겨울을 폐쇄병동에서 지낸다. 노숙자들은 병원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굴러 들어온 떡이다. 김 조사관은 “최악의 경우 원하지 않는 치료를 받아 없던 병이 생기는 일도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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