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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끄고 스승님과 함께 도덕경 읊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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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끄고 스승님과 함께 도덕경 읊어요”

입력
2015.11.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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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박승희(오른쪽에서 세 번째)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오거서 독서모임에 참여한 학생들이 각자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성균관대 박승희(오른쪽에서 세 번째)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오거서 독서모임에 참여한 학생들이 각자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반야심경을 읽다가 일체개공(一切皆空)이라는 구절이 마음에 깊이 남았어요. 세상 모든 현상은 실체가 없고, 감정도 순간일 뿐이라는 의미죠. 모두 지나갈 일인데 왜 그렇게 많은 좌절과 고민을 거듭했는지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5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박승희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연구실. 이 학교 법학과에 다니는 최철규(26)씨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반야심경을 읽으며 느낀 소회를 풀어냈다. 최씨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화가 날 때가 많았는데, 반야심경이 이런 감정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됐다”는 말로 감상을 마무리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박 교수는 “많은 학생들이 성공과 외모 등 다른 이들이 정한 기준을 좇으며 번민한다. 이런 집착에서 벗어나야 자유를 찾을 수 있다”고 화답했다. 연구실에 모인 6명의 학생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박 교수와 함께 반야심경과 도덕경을 읽는 ‘오거서(五車書) 독서모임’ 참여 학생들이다.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에서 유래한 오거서는 ‘다섯 수레가 될 정도로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미다. 성균관대 학술정보원이 함께 책을 읽고 싶어하는 교수와 학생들을 연결해줘 이번 학기부터 시작된 활동이다. 학교가 책 읽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셈이다.

오거서 모임은 한 학기 동안 최소 2주에 한 번 모여 고전이나 양서 한 권을 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운영 방식은 교수와 학생들이 상의해 결정하며 강연, 통독, 낭독, 발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박 교수 외에도 송봉식 정보통신공학과 교수, 송해룡 신문방송학과 교수, 오삼균 학술정보관장, 김상현 학부대학 교수(철학), 최정현 러시아어학과 교수 등 6명의 교수들이 각각 10여명의 학생들과 모임을 진행한다.

이중 박승희 교수는 안식년 중인데도 연구시간을 쪼개 학생들과 만날 정도로 열성이다. 최정현 교수는 “러시아문화사인 ‘이콘과 도끼’를 꼭 학생들과 함께 읽고 싶다”고 직접 학술정보원을 찾아와 참가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모두 “학생들과의 대화, 독서의 즐거움에 굶주려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모임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이다. 신혜연(22ㆍ사회학)씨는 “전공 지식은 수업시간에 배울 수 있지만 삶의 지혜를 배울 기회는 흔치 않다”며 “교수님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성숙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거서 독서모임은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중독된 학생들에 대한 ‘디지털 다이어트’ 필요성도 강조한다. 오삼균 학술정보관장은 “요즘 학생들은 책 한두 페이지만 넘겨도 스마트폰을 찾을 정도로 디지털 기기에 중독됐다”며 “조금이나마 디지털 기기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모임 시간에는 휴대폰을 끄게 한다”고 말했다. 5년 전부터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송봉식 교수는 “학생들에게도 스마트폰에서 벗어나면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이 올해 발표한 ‘2014 대학도서관 통계분석’을 보면 4년제 대학 도서관의 학생 한 명당 연평균 대출도서는 2011년 12권에서 2012년 11.2권, 2013년 10.2권, 지난해 9권으로 해마다 감소 추세다. 오삼균 교수는 “스마트폰과 SNS가 학생들에게 책 읽을 시간을 앗아가고 있다”며 “도서구입비, 활동비 등을 꾸준히 지원하며 독서모임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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