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청년희망펀드의 누적 기부금액이 600억원을 넘어섰다. 대기업 총수들이 기부를 약속한 액수까지 모두 반영하면 이미 1,000억원에 근접할 것이다. 펀드를 운용할 청년희망재단도 5일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홈페이지도 만들었고 사업의 형태도 일단 갖췄다. 아이디어도 공모하고 각계 의견수렴을 통해 사업을 꾸려나갈 것이라고 한다.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대통령이 뭐라도 해보겠다는 취지를 공감하지 못하는 바 아니다. 하지만 추진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들이 보인다. 당초 전 국민의 자발적 참여방식으로 기금을 조성한다고 했으나, 일반인 가입이 지지부진하면서 결국 또 공공조직과 기업이 중심이 되고 말았다. 일부 시중은행은 직원들에게 펀드를 강제 할당을 해 말썽이 되는 바람에, 금융노동조합이 “청년희망펀드는 자발적인 의사에 의한 순수한 기부로 추진돼야 한다. 강제로 할당해서 본연의 취지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성명을 냈다. 민간의 지지부진한 모금은 말이 펀드지 세액공제혜택만 있을 뿐, 원금을 돌려받거나 수익이 배분되는 것도 아닌 탓이기도 할 것이다.
기업들도 줄줄이 동원됐다. 한 기업 총수는 “할당된 것이 맞다”고 인정했다. 총수들은 사재를 터는 형태로 수 십억원에서 수 백억원까지 내놓았다. 월급을 떼어내 펀드에 가입하게 된 임직원들에게서도 볼멘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과거에도 관 주도로 준조세 성격의 성금을 국민과 기업에게 거둔 적이 많았다. 방위성금, 평화의 댐 성금, 새마을성금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심지어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은 기업 총수들에게 수 천억원의 정치자금을 자발적으로 헌납하도록 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눈밖에 나서는 안될 뿐 아니라 정부 정책을 거스를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청년 일자리 문제는 이런 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기업은 투자를 통해, 정부는 예산과 입법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정부가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연간 2조원 이상의 예산을 쏟아 부어도 실업률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1,000억원 남짓한 청년희망펀드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나 지역별 창조경제혁신센터 설립도 마찬가지다. 이번 정부에서도 정부 할 일을 기업에 떠넘기는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 손쉽게 기업 부담에 의존할 게 아니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일자리 창출에 핵심적인 법안 통과를 위해 국회를 설득하거나, 노동구조개혁에 매진하는 것이 정부 본연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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