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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핀란드의 교훈

입력
2015.11.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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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의 흐름을 뒤바꾼 전투 중 하나가 1943년 1월 소련의 승리로 끝난 스탈린그라드(현 볼고그라드) 전투다. 히틀러의 첫 참패로 기록된 이 전투 이후 독일군은 전쟁에서 더 이상 우위를 보여주지 못했다. 사실상 독일과 소련의 전쟁이라는 2차대전에서 소련이 전승국의 지위를 다질 수 있었던 것도 이 전투에서였다. 그러나 핀란드 국민에게는 조국을 소련의 속국으로 전락시킨 전투로 기억된다. 역사적으로 독일과 소련의 끊임없는 간섭에 시달렸던 핀란드의 ‘주인’이 소련으로 결판난 것이다.

▦ ‘핀란드화(Finlandization)’는 한 나라가 주변 대국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대가로 독립과 중립을 보장받는다는 의미다. 1960년대 서독에서 나온 말로 냉전 시기 정치ㆍ사회ㆍ문화적으로 소련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굴욕을 겪은 핀란드를 지칭하는 말이다. 핀란드가 아직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지 않고, 유럽연합(EU)도 소련 해체 이후 참여한 것은 태생적으로 내재된 안보불안과 소련이 남긴 짙은 그림자 때문이다. 당연히 핀란드 국민은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한 적응’일 뿐이라는 것이다.

▦ 75년 7월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열린 유럽안보회의는 동서 양 진영으로부터 인권ㆍ체제 존중을 끌어낸 유럽평화의 기념비적 이정표로 꼽힌다. ‘유럽의 안전보장 및 상호협력에 관한 헬싱키 최종의정서(헬싱키 협약)’는 유럽평화의 여정으로 불리는 헬싱키 프로세스의 산물이다. 영토 불가침, 기본권 존중 등의 합의는 냉전 종식 때까지 이어졌다. 인구 500만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 그것도 소련의 식민지나 다름없던 핀란드가 이런 담대한 역사를 이룰 수 있는 원천은 어디에서 왔을까.

▦ ‘중국경사론’이 부각되면서 한국이 중국판 핀란드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미국에서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소련이 핀란드에 접근해 대 소련 유화책을 펴게 한 것처럼 중국이 한국에 접근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셰일 호로위츠 위스콘신대 교수), “한중관계 개선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핀란드화 가능성에 대한 염려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켄트 칼더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등이다. 황당한 주장이지만, 우리가 핀란드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있다. 헬싱키 프로세스를 낳은 힘, 지정학적 역경을 외교적 자산으로 승화시킨 전략이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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