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복지인증 성지농장 이범호 대표
삼겹살 돈까스 소시지 젤리…. 우리가 즐겨 먹는 이 음식들에 공통으로 들어간 것은 돼지고기다. 국내 사육되는 돼지 수는 약 1,000만마리. 하지만 동물원 속 돼지가 아니라 우리가 먹는 돼지를 직접 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돼지들은 햇빛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농장에 갇혀 살기 때문이다.
이런 돼지들의 열악한 사육 환경을 조금이라도 개선해보자는 움직임이 국내에서 일고 있다. 정부는 2012년부터 인도적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농장을 동물복지축산농장으로 인증해주고 있다. 인증을 받은 돼지사육농장은 3곳인데 하나는 정부가 운영하는 국립축산과학원이고 나머지 두 곳은 민간 농장이다. 그 중 하나로 지난 6월 동물복지인증을 받은 경기 이천 모가면 성지농장의 이범호(63)대표를 만났다.
“동물복지 돼지 농장이라고 하면 굉장히 깨끗한 환경을 상상하지요. 하지만 돼지는 진흙탕에서 뒹굴고 더러운 걸 좋아해요.”
방목장에 나온 돼지들이 물 웅덩이에서 목욕을 하고 방목장 안을 내달리고 있었다. 이 곳 2,000여 마리 돼지는 햇빛, 조명, 암모니아 환기까지 조절하는 사육장 내에서 물과 사료를 먹고 깔짚 위에서 쉰다. 새끼를 낳은 후 20여 일간의 예민한 시기를 빼면 새끼와 어미가 격리되거나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는 일도 없다.
새끼 돼지들도 이빨과 꼬리를 자르지 않는다. 하지만 워낙 호기심이 많아 서로 움직이는 꼬리를 씹고 상처를 내기 때문에 공 모양의 나무조각, 소금블록, 체인 등 대신 씹을 수 있는 장난감을 넣어준다.
이 대표는 1991년 돼지농가 협동조합인 도드람을 설립해 12년간 운영했다. 지금은 성지농장을 포함해 10여 축산농가가 함께하는 축산식품전문업체 돈마루를 이끌고 있다. 30여년간 축산업을 해온 그에게도 동물복지인증 농장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설을 바꾸는 데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고, 돼지에 대한 직원들의 인식도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기회가 온 건 2011년 구제역 사태 때였다. 사육 중이던 돼지를 모두 살처분 한 뒤 텅 빈 돈사를 바라보며 동물복지농장을 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갈 길이 멀다고 한다. 성지농장은 어미 돼지를 기르는 모돈농장이다. 여기서 태어난 새끼 돼지를 30㎏될 때까지 키운 다음 위탁 농장에 맡기는데 이 위탁 농장도 동물복지인증을 신청한 상태다. 모돈, 자돈농장의 동물복지와 함께 중요한 것이 바로 도축이다. 현재 동물복지인증을 받은 도축장은 경남 부경과 김해 2곳인데 이천의 돼지를 거기까지 보내 도축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현재 도축하고 있는 제천 박달재 도축장에도 동물복지인증을 받을 것을 권하고 있다. 모돈ㆍ자돈 농장, 도축장 전부가 동물복지인증을 받은 이후에야 소비자가 구입하는 돼지고기에 ‘동물복지인증’마크를 붙일 수 있다.
동물복지인증농장이 늘어나는 데 결정적인 보탬을 주는 것은 소비자다. 복지인증 마크가 붙은 돼지고기 가격은 일반 고기에 비해 30~40% 비싸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동물복지인증 농장이 서서히 확산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아직은 도입 초기이기 때문에 눈에 띄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돼지농가, 도축장들이 점차 동물복지인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에 조금씩 늘어날 겁니다. 이렇게 농가도 개선을 해나가야 하지만 여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바로 소비자들의 선택입니다.”
이천=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한송아 인턴기자 ssongr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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