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개막전에서 완패한 프미미어12 야구 대표팀이 본격적인 예선 라운드를 치르기 위해 9일 대만에 입성했다. 한국 야구가 대만을 다시 찾은 감회는 남다르다. 이 곳에서 2년 전 열린 2013년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1라운드 탈락의 굴욕을 겪었기 때문이다. 2006년 1회 대회 4강, 2009년 2회 대회 준우승에 빛나는 한국 야구의 ‘참사’ 현장이었다.
명예 회복을 위해선 누가 뭐래도 박병호(29ㆍ넥센)와 이대호(33ㆍ소프트뱅크)의 ‘한 방’이 필요하다. 박병호는 8일 일본전에서 4타수 2안타로 대표팀 가운데 가장 좋은 타격 성적을 거뒀지만 빗맞은 2루타와 단타로 승패와는 무관했다. 이대호는 4타수 1안타에 그쳤다. 특히 오타니 쇼헤이(21ㆍ니혼햄)와 맞대결에선 삼진 2개에 병살타 1개로 고개를 숙였다.
한국 야구는 그간 국제대회에서 이승엽(39ㆍ삼성)으로 대표됐던 해결사가 있었기에 박빙의 상황에서 드라마틱한 승부가 연출된 적이 많았다. 그래서 이날 일본과 경기에서도 0-4로 뒤진 8회 2사 만루, 0-5로 뒤진 9회 무사 만루에서 일말의 희망을 가졌지만 이승엽은 더 이상 없었다.
그러나 SBS스포츠 해설위원으로 삿포로돔을 찾은 이승엽은 “박병호가 여러 모로 나보다 낫다”며 후배의 기를 살려주었다. 야구계가 박병호에게 기대하는 ‘포스트 이승엽’은 국내 리그보다 국제 무대에서 더 절실하기 때문이다. 또 이대호는 박병호의 등장 이전에 이승엽의 후계자로 기대를 모았고, 일본에서 4년간 활약하며 올 시즌엔 일본시리즈 최우수선수(MVP)까지 차지했다.
박병호와 이대호의 이번 대회 활약은 자신들의 진로와도 직결된다. 박병호의 소속팀 넥센은 지난 7일 메이저리그 포스팅 금액 1,285만 달러(약 147억원)을 수용해 박병호의 빅리그 진출은 사실상 결정됐다. 다만 10일 포스팅 승리 팀이 발표된 후 연봉 협상이 마지막 관문이다. 물론 아시아 타자 역대 2위에 해당하는 포스팅 금액을 베팅한 팀이 연봉 협상을 소홀히 할 리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다. 박병호의 프리미어12 활약 여부는 자신의 몸값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자유계약선수(FA) 신분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이대호는 좀더 간절하다. 이대호는 2000년대 후반 KBO리그를 평정했고, 2012년 일본으로 건너간 뒤 오릭스와 소프트뱅크에서 4년을 뛰며 최고 타자 반열에 올라섰다. 메이저리그가 한국보다 일본 야구를 조금 더 높게 평가하는 점을 비추어 최근 성적만 놓고 보면 이대호는 박병호 못지 않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대호의 걸림돌은 내년이면 서른 넷이 되는 나이와 수비다. 그럼에도 이대호는 안정적인 일본을 떠나 도전을 선택했다. 연봉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꿈의 무대를 야구 인생의 최종 목표로 정한 것이다.
비록 일본전에서는 둘 모두 기대에 못 미쳤지만 박병호는 실전 감각이 완전치 않고 이대호는 손바닥 부상 여파로 컨디션이 100%는 아니다. 게다가 그런 주변의 기대를 잘 알기에 일본전이라는 심적 부담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대만으로 옮겨 시작할 박병호와 이대호의 메이저리그 진출 쇼케이스는 이승엽처럼 필요할 때 한 번만 해 주면 된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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