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세모, 싸락눈 흩날리는 예술의전당 구내에 들어선 촌로는 별로 놀랍지 않다는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여기가 거기여?” 이 말이 특유의 자존 방식임을 잘 아는 나는 “생각보다 작지요?”로 맞장구 쳤다. 힐끗 나를 바라본 촌로는 이내 무시하듯 말없이 주변을 살폈다. 이윽고 그의 시선은 서예관에 멈췄다. 한때 마당 한편 컨테이너를 개인 공간으로 꾸며 필묵을 갖춰놓고 서화를 즐기던 당신. 미세하게 떨기 시작한 손 때문에 비록 절필하였으나 서예관의 웅장한 자태에 마음 끌림은 어쩔 수 없는 듯 했다. 그러나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이 낯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었다. “안은 높고 크네.” 여태껏 본 악단보다 훨씬 많은 악사들 그리고 각양각색의 악기들. 무질서하게 등장한 악사들이 앉자마자 저마다 어지러이 소리를 내는 것도, 그러다가 한 음으로 맞춰가는 것도 신기했던 당신. 분명 그 과정을 난세의 난음들이 골라져 하나의 소리로 정화되는 것으로 해석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제57회 크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가 시작되었다.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과 프랑스 작곡가 토마시의 트롬본 협주곡,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5번.
밤나무골로 귀가한 후 고마움과 더불어 당신이 그리던 음악을 들었다는 말씀을 전화로 전해주셨다. 놀라운 이야기였다. 난생 처음 듣는 음악들이 평소 그리던 음악이라니, 결코 기대했던 반응은 아니었다. 게다가 너무 감동적이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미루어 보건대 대금과 단소, 농악에 익숙한 당신에게 3관 편성의 서양 오케스트라 규모와 스펙터클한 사운드는 소리의 개벽 그 자체였던 것 같다. 전당 건물과 내부의 규모보다 훨씬 거대한, 소리의 건축물에 철저히 압도당한 것이다. 그러한 중에 수많은 것을 상상했고 보았을 것이며, 마지막 악장의 피날레는 귀가 길 내내 환청으로 동행했을 것이다. 벅찬 감동으로 촌로는 이 날의 감흥을 시에 담아 이메일로 보내주셨다(현대문법을 초월한, 원문 그대로임을 이해 바람).
“웅장하면서 가날프고 억쎈파도가 잔잔한 호수처럼/ 인간에게 늑김을 주는 음악/ 황홀한 늑김// 고개는 흔들흔들 손가락은 무릅에서 박을치고/ 무어시 부러울고 장부의 세상사 그뿐니가하노라”
며칠 뒤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주회 당일에는 프로그램도 받았기에 어찌 못했지만 이날은 어쩔 수 없는 궁금함으로 조심스레 물어오셨다. 마지막 곡이 무엇이었냐고. 그러고 보니 프로그램의 제목과 작곡가 이름은 온통 영어로만 적혀 있었다. 나 역시 당신을 평소 관객처럼 대했기에 그날 당신은 분명한 사전 정보 없이 소리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제목과 악장, 그리고 작곡가의 이름을 한글로 적어 또박또박 읽어드렸다. 당신의 감동이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이란 명칭으로 구체화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작품을 설명해 드렸다.
소련 공산 정권의 비판으로 힘들었던 쇼스타코비치가 이를 단번에 극복할 수 있었던 걸작으로, 그에게 가혹했던 당(黨)도 초연 당시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작품이다. 그렇다고 아무도 이것을 쇼스타코비치의 아부, 굴종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품을 통해 어떠한 압박에도 굴하지 않았던 작곡가의 자유 의지를 공감, 칭송한다. 선생님의 느낌도 그러했을 것이다. 마지막 ‘승리의 악장’의 충만한 에너지로 올해 잘 마무리하시길….
이후 당신의 컴퓨터, 유튜브에는 쇼스타코비치 5번을 시작으로 엘 시스테마가 연주하는 쇼스타코비치 12번 교향곡, 베토벤 5번 교향곡 등 스펙터클한 여러 교향곡들이 즐겨찾기 되었다. 또 나의 오케스트라 음악까지도 듣고 작곡가의 느낌을 이야기하는 경지에 이르셨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남의 표현을 귀히 이해하려는 심성. 경청과 이해, 반응. 진정, 예술을 통한 소중한 소통 아닐까?
황성호 작곡가ㆍ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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