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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영향력 감소 위기감을 트럼프의 막말로 해소

입력
2015.11.08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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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로 2016년 미국 대선 투표일(11월8일)이 365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한국일보는 ‘미 대선 D-365’을 시작으로 미 대선일 때까지 판도와 주요 후보들의 공약 등을 통해 변화하는 미국 사회의 흐름과 한국에 대한 영향 등을 분석한 현지 전문가 기고를 매월 1회씩 게재할 예정입니다. 그 첫 회는 미국 밀워키 위스콘신대 정치학과 허욱 석좌교수가 맡았습니다.

편집자 주

도널드 프럼프 미 공화당 대선후보가 미 코미디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 출연한 7일 밤 뉴욕시 NBC방송국 앞에서 히스패닉계 시위자가 트럼프의 ‘불법 이민자는 범죄자’ 발언을 규탄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뉴욕=UPI 연합뉴스
도널드 프럼프 미 공화당 대선후보가 미 코미디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 출연한 7일 밤 뉴욕시 NBC방송국 앞에서 히스패닉계 시위자가 트럼프의 ‘불법 이민자는 범죄자’ 발언을 규탄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뉴욕=UPI 연합뉴스

2016년 미국 대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현재 공화당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선두를 달리고 있고 민주당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번 대선은 예년 선거와 사뭇 다른 점이 있다. 공화당 후보 중 선두를 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정통 정치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론 조사에서 공화당 후보 중 줄곧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트럼프 후보는 부동산 재벌로 사업가로 평생을 보낸 사람이다. 그가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던 지난 6월에 그를 눈 여겨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높은 지지율이 나왔지만, 미국 선거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트럼프의 높은 지지율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민자 는 범죄자”막말에도 굳건한 선두

그러나 5개월이 지난 현재도 그는 선두를 달리고 있고 이제는 트럼프 후보가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어도 놀랍지 않다는 조심스런 전망도 나온다. 더욱 놀라운 것은 보통 정치가들이라면 살아남지 못할 막말과 실언을 남발하면서도 계속 높은 지지율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출마를 선언하면서 트럼프 후보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오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 아니고 강간범이고 마약 중독자들이고 미국으로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다. 국경 수비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내가 들은 생생한 얘기들이다” 라고 말하면서 멕시코 이민자들을 비하했다.

/그림2 미국 사회에서 백인과 히스패닉 구성 비율 변화. 히스패닉 계통이 아닌 백인 인구 비율이 2060년에는 절반 이하까지 하락하는 반면, 히스패닉 비율은 31%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자료: 미국 인구조사국>

최근에는 “한국이 삼성과 LG 제품을 미국에 팔면서 돈 한 푼도 안들이고 주한 미군을 통해 안보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잘 사는 나라인데 우리가 많은 돈을 들여서 안보를 제공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주한 미군의 경비 중 인건비를 제외한 비용의 절반 이상을 부담하고 있다. 미 의회 조사국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인건비를 제외한 주한 미군 주둔 비용은 약 11억달러이고 대한민국은 이 중에 7억6,000만달러 가량을 부담했다. 2015년에도 8억6,000만달러를 주한 미군 주둔 비용으로 지불한다. 결코 미국이 공짜로 안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 선거에서는 이렇게 사실과 다른 얘기를 하는 정치인은 지지를 받지 못했다. 전문성이 떨어져서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후보가 이민자를 비하하고 사실에 반하는 얘기를 해도 지지율이 높은 이유는 뭘까.

언론에서는 기성 정치인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식상함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필자는 그 보다는 미 중산층 백인들의 변화된 시각을 트럼프가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30년 가까이 미국에 살면서 느끼는 것이기도 하지만, 근래 들어 반 이민 정서가 미국 중산층 백인들 사이에 크게 증가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남미로부터의 불법 이민자 문제이다. 국경을 지키는데 막대한 예산을 지출함에도 불법 이민 문제가 계속 커지고 있고, 이러한 불법 이민이 미국의 실업률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중산층 백인이 증가 추세에 있다.

더욱이 중남미 혈통을 가진 인구(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쓰는 히스패닉 인구)가 급격히 늘어가며 백인주도 미국의 정체성을 위협하자 이러한 정서가 백인 중산층 사이에서 확대되고 있다. 예를 들면 1970년 남미 혈통 미국 인구 수는 960만명이었으나, 2014년 5,540만명까지 늘었다. 같은 기간 미국 전체 인구에서 남미 혈통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도 4.7%에서 17.4%로 급속히 증가했다. 미국 퓨리서치 센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남미 혈통을 가진 미국 인구가 2050년에는 1억600만명에 다다를 것으로 예측된다. 남미 혈통 인구의 증가는 이 사람들의 정치적 영향력도 증대시켰다.

반면 올해 3월 발표된 미국 인구조사국 보고서에 따르면 2060년에는 백인 인구가 미국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9.4%로 감소될 전망이다. 즉 45년 후에는 백인이 미국 전체 인구의 절반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구 분포 변화는 중산층 백인들이 반 이민 정서를 갖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림3미국 가구당 실질 소득 중간값 추이. 2015년 현재 미국 중산층의 생활수준이 20년전 수준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료: 미국 인구조사국>

점점 위축되는 백인 중산층 불안 트럼프가 자극

전체 인구에서 각 인종이 차지하는 비율의 변화 외에도, 반 외국ㆍ반 이민 정서가 나타나는 또 다른 이유는 20여년 넘게 정체된 미국 중산층의 실질 소득이다. 2013년 미국의 가구당 평균 소득 중간 값은 5만2,000달러인데 이는 1988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즉 미국 중산층이 체감하기에는 미국 경제가 지난 25년간 발전을 하지 못한 것이다.

많은 미국 중산층 백인들은 실질 소득의 정체를 외국인 이민자 증가와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는 아웃소싱으로 인한 미국 내 일자리 감소, 그리고 지속적인 무역 적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에서 유입된 이민자들과 불법 이민자들이 중산층 백인들의 일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백인들의 숫자가 증가하고, 기업들이 외국으로 값싼 노동자를 찾아 이주하거나 외국인을 현지에서 직접 고용함으로써, 새롭게 창출되는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믿는 것이다.

또 외국 정부가 무역 규제나 환율 조작 등 불공정한 무역정책을 실행해서 미국 기업들이 고전하고 있고, 이에 따른 무역 적자로 미국 기업들이 성장을 못해서 미국 경제가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것으로도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위기에 빠진 미국 경제가 이후 실업률 감소에는 진전을 보였으나, 실질소득 증가로는 이어지지 않자, 국민 정서가 전반적으로 보수주의로 회귀하는 있는 것이다. 어느 국가든지 경제적 어려움이 일정 기간 동안 지속되면 ‘보수주의’ 성향이 나타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10여년 간 계속된 경기 침체가 중산층 백인들이 보수적 시각을 갖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산층 백인들은 불법 이민은 막고, 합법 이민도 줄이고, 외국과의 무역 조건을 개선하거나 미국도 정부가 보호 무역 수단을 동원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정서를 반영해, 평소 말하고 싶었지만 공개적으로 하기 힘든 말을 트럼프 후보가 선거 유세에서 쏟아내자 중산층 백인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으며, 트럼프에 대한 지지로 나타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인들은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 강하다. 세계 최강대국으로 오랜 기간 군림해 오면서 축적된 국민 정서가 국가에 대한 자부심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이 미국을 급격히 추격해 오고 있다. 갈 길이 바쁜데 미국 경제는 거북 걸음이다. 경제 발전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해야 되지만, 예산의 약 20%를 국방비에 지출하고 있다. 그런데 독일 일본 한국과 같은 나라들은 경제 발전으로 부를 축적하면서도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고 중산층 국민들은 생각한다.

따라서 미국 경제도 어려운데 많은 예산을 들여 이런 나라들을 보호 할 것이 아니라, 이들 국가로 하여금 안보 지원에 대해 보상하거나 미군을 철수하여 국방비 지출을 줄여야 된다고 생각하는 정서가 중산층에 팽배하다. 한국 독일 일본은 협상을 통해 이미 미군 주둔 비용 중 상당 부분을 지불하지만, 이런 사실은 트럼프 후보에게는 중요하지 않고 많은 중산층 시민들을 아예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중산층의 정서가 부유한 외국에 대한 안보 지원을 줄이거나 철회하고, 그 재원을 미국 경제 발전에 투자하기를 원하니 그 감정에 호소하여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의도된 선동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호한 정서에 기댄 지지율 오래 유지되기 힘들 것

결론적으로 트럼프 후보가 예상외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는 미국 중산층 특히 백인 중산층 인구의 인식 및 정서 변화를 간파하고 그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이 먹혀 들기 때문이다. 중산층 정서라는 것이 쉽게 바뀌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서 변하기 때문에 미국 경제가 급격히 호조되거나 선거 캠페인 기간 중 예상치 못한 돌변 사태가 생기지 않는 한 트럼프 후보에 대한 지지는 상당 기간 지속 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럼에도 필자는 트럼프 후보가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최종 지명될 것으로는 생각지 않는다. 어느 시점이 되면, 트럼프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도 멕시코 국경에 콘크리트 벽을 짓겠다는 허황된 아이디어를 내고 외국을 비하하는 사람에게 국가 운영을 맡기면 경제 및 외교에 많은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림4 미국 밀워키 위스콘신대 정치학과 허욱 석좌교수.

허욱 교수는

1986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 텍사스A&M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부터 밀워키 위스콘신대에서 교수로 있으며, 동대학의 한국정치연구소 소장 등으로 활동해 왔다. 저서로 <한국의 부상: 경제 발전, 국력, 외교 관계>, <1980년 이후의 한국> 등 다수 저서와 70여편의 학술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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