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에서 자란 밴드 중식이가 메이저 진출의 길목에 섰다. 지난 5일 Mnet '슈퍼스타K7' TOP 3 눈 앞에서 탈락해 우승의 꿈은 꺾였지만 광고, 방송, 행사 등 부가적인 영역의 활동 기회는 활짝 열려있다. '사연' 좋아하는 제작진의 전략이 또 하나의 서민밴드를 스타로 만든 셈이다.
버스커버스커, 장미여관, 혁오 등 언더에서 활동하던 밴드들이 메이저에 진출, 상품화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불과 4~5년 사이의 변화다.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인디밴드의 진출 영역이 확장되면서 신생 밴드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4년차 밴드 라이노 어쿠스틱의 박정근은 "지금 홍대는 그 어느 때보다 대중성이 짙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홍대 버스킹 문화가 이처럼 과열 양상을 띠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너도나도 앰프를 들고 거리로 나온다"고 말했다.
수요보다 많은 공급…서민밴드가 살아남는 법
밴드가 포화상태에 이르다 보니 이들 스스로 고민이 많다. 음악을 찾아 들으려는 사람들은 줄어드는데 공급은 계속 늘어난다. 홍대 걷고 싶은 거리의 자리 경쟁도 그만큼 치열해졌다. 아침부터 길거리 한편에 자리를 맡아놓거나 다른 팀과 불과 3~5m 간격을 두고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다른 밴드와 소리가 겹쳐 열심히 준비한 공연이 소음으로 다가오는 점도 문제다.
매니지먼트가 없는 인디밴드들은 마케팅 활동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인디밴드는 주로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들을 알리는데, 전문 인력이 아닌 이들이 네티즌을 유입시키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밴드 야놀자의 보컬 박건우(20)씨는 "거리에 나오는 밴드는 차고 넘치는데 홍보수단은 SNS가 전부다. 밴드를 알리는 데 한계를 느껴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갈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토로했다.
인디음악 활동을 본업으로 삼으면 본격적으로 금전 문제에 시달리게 된다. 지난 3일 신도림의 한 연습실에서 만난 3년차 밴드 소울파이어의 이야기엔 삶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현재는 50만원~100만원 수준의 행사비로 한 달에 35만원인 연습실 월세를 내기도 빠듯해 멤버들 대부분이 아르바이트 등으로 투잡을 뛴다. 밴드 수입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음악만으로 생계를 꾸리겠다는 게 이들의 작은 목표다. 활동비를 최소화하고자 연습실도 신도림의 공장지대 인근으로 잡았다. 보컬 고은혜(27)씨는 "페이를 안 주고 무대에 세우려는 업소들이 많다"며 "주먹구구식으로 활동하는 신생 버스커들은 장소만 제공해줘도 공연을 하니 페이는 점점 작아지고 정당하게 우리를 대우해주는 업자들이 없어지는 것 같다"고 한숨을 내뱉었다.
레이블 소울빌의 박지언(28) 대표는 "무명 버스커의 경우 행사비가 10만원~30만원 정도 밖에 안된다. 버스커버스커 같은 메이저 밴드로 성장하면 행사비는 1,000만원~1,500만원으로 껑충 뛴다"며 "소울파이어는 생업 문제 등으로 멤버를 7명이나 교체했다. 지금은 멤버들과 활동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만, 앞으로 생활비 정도는 벌 수 있게 자리잡는 것이 과제"라고 털어놨다.
라이노 어쿠스틱의 박정근은 "우리도 2년 동안 벌이가 거의 없어 연습실 월세 내기도 힘들었다. 많은 밴드들이 1~2년 차에 경제적인 문제로 해체한다"며 "지금 이름을 알린 팀들은 대부분 버티기를 잘한 팀들이다"라고 말했다.
'오디션 공략' 성공 추구하는 밴드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프로듀싱 능력이 있는 정식 밴드와 취미로 음악을 하는 버스커 간의 구분이 모호해진 것. 소울빌의 박지언 대표는 "최근 3~4년 사이 인디음악 수준이 하향화된 경향이 있다. 제대로 음정도 못 맞추는데 팀을 꾸려 활동을 시작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며 "이런 버스커와 프로 밴드가 한 부류로 묶여 인식되는 건 안타깝다"고 밝혔다.
밴드 10cm(십센치), 옥상달빛 등이 소속돼 있는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김형수 대표는 "2000년대 초반에는 다양성, 개성을 중시하는 소수의 프로들이 거리로 나왔다"며 "지금 홍대에서 활동하는 버스커들은 미디어 진출에 맞춰 대중적인 음악과 콘셉트를 보이는 팀들이 많다. 노래만 잘하면 쉽게 밴드를 꾸릴 수 있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2003년 밴드 올드피쉬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라이브 클럽에서 데뷔하고 여러 소규모 공연으로 실력을 입증하는 것이 주된 성공 경로였다. 델리스파이스, 크라잉넛과 같은 1세대 인디밴드들이 끈기있는 오프라인 음악활동으로 차근차근 이름을 알렸다. 김 대표는 "3~4년 사이 인디가수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벼락스타가 되는 사례가 늘었다. 개성 없는 버스커들까지 부각되는 경우가 생기니 다른 실력파 밴드들이 상대적 박탈감이나 허무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밴드와 대중 간의 소통 창구가 단편적이기 때문에 이들의 무분별한 오디션 프로그램 진출을 마냥 탓할 수만은 없다. 김 대표는 "홍보도 중요하지만 가수 본인만의 개성을 찾고 그 부분을 특화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시장이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자신만의 메리트를 가진 가수가 늘어나야 할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소라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조영현 인턴기자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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