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고등학교 동기들의 인터넷 카페를 알게 됐다. 십여 명이 모여 술추렴하는 사진이 눈에 띄었다. 퍼뜩 기억나는 얼굴은 네 명 정도. 대개들 살이 많이 올랐고 머리가 벗겨진 녀석도 있었다. 한때 친하게 지냈던 M은 양복을 갖춰 입은 폼이 대기업 간부쯤 되는 듯싶었다. 그 외 녀석들은 그저 내 조카의 친구의 아빠거나 삼촌 같았다. 다른 카테고리를 살폈다. 고3 출석부가 옮겨져 있었고, 현주소와 직업 따위가 적혀있었다. 덩치 좋고 리더십 좋고 주먹도 셌던 K는 형사가 되어 있었고, 연극영화과 가겠다며 온갖 폼 다 잡고 다니던 L은 횟집 사장이었다. 사진에서 본 M은 역시나 유명 증권회사 부장. 내 이름도 있었다. 그런데, 주소도 직업도 공란이었다. 졸업 이후 특별히 연락하고 지낸 친구가 없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름 절친했던 녀석들도 공란이었다. 명부에 없는 친구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봤다. 첫 시집 냈을 때, 우연히 신문기사를 보곤 연락해 “야, 너 자리 잡았대!” 하던 J는 뭐하고 살까. 도대체 내가 어떤 ‘자리’를 잡은 건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궁금했다. 그러다 뉴스를 봤다. 무슨 민사소송 관련 자문 인터뷰를 하는 변호사가 나왔다. 낯이 익었다. 자막을 보곤 반가웠다. 조그맣고 귀엽고 공부 잘하던 G였다. “너도 자리 잡은 거냐?” 화면을 향해 중얼거렸다. 사십 중반의 가을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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