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피엔스 씨의 위험한 고민
권복규 등 지음
메디치 발행ㆍ336쪽ㆍ1만5,000원

“나를 만든 것에 책임을 다하라. 그렇지 않으면 통제 불능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
신간 ‘호모 사피엔스씨의 위험한 고민’ 중 유전공학의 미래를 다룬 제 6장에서 재인용한 이 말은 장르문학의 효시로 꼽히는 SF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 자신을 만들어낸 과학자에게 괴물이 던진 무시무시한 충고이자 호소다. 초판이 1818년 나왔으니 근 200년 전 작품이지만, “사람이 만든 기술을 책임감 있게 다루지 않을 때, 그것들이 역습을 할 것”이라는 메시지는 전혀 낡지 않았다.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하고 있는 오늘날, 그리고 미래에 더 새겨들어야 할 경고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들어낸 괴물은 허구지만, 현대 유전공학은 놀랍고 두려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올해 4월 중국 과학자들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라는 기술을 이용해 인간 배아의 유전자 편집에 성공했다. 해로운 유전자는 잘라내고 원하는 대로 편집함으로써 맞춤형 아기를 디자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유전자 과학의 혁명이라 할 만한 이 사건으로 생명윤리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돈만 있으면 미용 성형수술 하듯 유전자를 편집해 더 똑똑하고 건강하고 예쁜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부익부 빈익빈 세상의 새로운 인간 차별을 우려할 만하다. 물론 난치성 유전질환 치료 같은 데 쓰일 수도 있는 기술이다. 축복과 재앙,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경계에서 결국 중요한 건 인간의 책임, 그리고 윤리일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씨의 위험한 고민’은 과학기술의 미래와 그에 따른 인간의 윤리적 책임을 묻는 책이다.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천문학자 이명현, 과학 커뮤니케이터 원종우, 미래 비전 전략가 정지훈 등 국내 스타급 과학자와 과학저술가 8명이 함께 썼다. 프롤로그 ‘과학은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는가’부터 에필로그 ‘선한 프로메테우스를 기억하라’까지 진지한 질문으로 경종을 울린다. 의료, 생명공학, 에너지, 로봇공학, 가상현실 등을 다루면서 저자들은 생명, 평등, 자유, 인권 등 과학과 기술이 낳은 가치와 관련한 논란을 각자의 시각으로 쉽게 풀어냈다.
필명 ‘파토’로 잘 알려진 과학 커뮤니케이터 원종우는 최악의 미래로 세 가지 시나리오를꼽는다. 바로 지구 멸망, 인류 멸절, 문명 종말이다. 당장 일어날 일은 아니지만 쓸데 없는 걱정이 결코 아님을, 그리고 현대 과학이 이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소개한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이정모 관장이 말하는 최선의 미래는 ‘멸종에서 살아남기’다. 지금은 지구 역사상 여섯 번째 대멸종의 시기이고, 대멸종이 있을 때마다 최상위 포식자는 반드시 멸종했음을 환기시키면서, 인류는 멸종을 피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멸종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멸종은 변화하는 자연에 적응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멸종으로 빈 자리는 다른 생물이 채우는 게 순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지구의 동식물 멸종 속도가 100배나 빨라진 것은 인간의 영향이다. 1개 종의 수명은 줄잡아 130만년이고 인류의 역사는 1만년이니 앞으로 130만년은 버텨야 하지 않겠냐며, 멸종을 재촉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문명 쇠퇴와 인류 멸종에 대비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정보통신 기술 발달에 따른 감시사회의 인권과 정보 권력 문제를 다룬 제 4장의 내용도 흥미롭다. 우리의 24시간을 훔쳐보는 빅브라더(국가정보권력)와 리틀시스터(기업정보권력)에 맞서 “우리를 감시하는 이들을 감시하라”고 강조한다.
인간을 닮은 로봇, 인간처럼 생각하는 로봇의 등장을 예고하는 장에서는 로봇의 권리를 묻는다. 사람의 인권이 아니고 로봇의 권리라니 생뚱맞아 보이지만 충분히 고민해야 할 문제다. 실제로 지뢰 제거 로봇과 함께 복무하던 병사가 그 로봇이 작전 중 손상을 입자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애원한 일이 있다. 사람 몸과 기계를 연결한 사이보그는 돈으로 인간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세상을 예고한다. 뇌에 칩을 넣어서 학습 능력을 높이는 일 같은 게 가능한 세상에서, 과학기술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질문은 민주주의와 평등 측면에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이슈다.
전체 8장으로 된 이 책은 메르스 사태로 본 한국의 질병관리 시스템, 원자력 발전의 문제점과 재생가능 에너지의 가능성, 창의적인 사고를 막는 한국 과학 교육의 문제점도 다룬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과학’과 이를 위한 실천이다. 에필로그를 쓴 파토 원종우는 “인간에게 불씨를 건네준 프로메테우스의 상냥함을 기억하자”며 모든 과학은 인간에게 따뜻해야 한다고, 과학기술은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읽다 보면 이 책이 던지는 질문들이 과학기술 종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미래가 걸린 중대사임을 깨닫게 된다.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아 문외한이라도 재미있게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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