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 시급한 정책 현안 부상
글로벌 자본 위축기 대비 급가속 조짐
살리는 구조조정 위한 정부 역할 절실
냉혹한 펀드매니저답게, 조지 소로스는 세계를 둘로 명확히 가른다. 자본의 중심과 주변, 글로벌 자본이 집결되는 몇몇 핵심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구의 나머지 대부분 지역이 그가 말하는 두 개의 세계다. 두 세계 사이엔 거대한 순환체계가 작동한다. 마치 심장이 온 몸에 피를 공급하듯, 중심은 글로벌 자본을 빨아들인 후 그걸 주변으로 다시 내보낸다.
중심으로부터 자본 공급이 왕성할 땐 경제도 왕성해지고, 반대로 자본 공급이 줄면 경제도 위축된다. 요컨대, 중심으로부터의 자본 공급량이 글로벌 경제의 성쇄 사이클을 만든다는 얘기다.
문제는 중심에서 자본 공급량을 줄일 때다. 중심은 독자적 이해에 따라 자본 공급량을 조절하기 때문에 공급량 변화에 따른 부작용이 적을 수밖에 없다. 반면 주변부 경제는 극심한 진통을 겪기 십상이다. 단순한 경기 위축 때문만은 아니다. 돈이 홍수일 때 빚 내서 여기저기 공장 짓고 빌딩을 올려놨으나, 갑자기 돈 줄이 마르면 그것들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빠진다. 그게 경제 거품이고, 거품 때문에 경제 전체가 붕괴하는 걸 피하려 필사적으로 거품 제거에 나서는 게 말하자면 구조조정이다.
최근 글로벌 자본의 흐름은 마치 계절이 겨울의 문턱에 이른 것처럼 위축의 초입에 이른 상황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이 경기부양을 위해 초저금리와 양적완화를 통해 막대한 유동성을 전 지구적으로 살포했다. 그리스 등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EU 경제가 침체에 빠지지 않고, 어쨌든 아베노믹스가 가동된 것도 중심에서의 ‘돈 풀기’ 결과다. 급기야 경제 전반에서 뚜렷한 호조를 확인한 미국은 금리인상을 천명하고 나섰다. EU와 일본이 양적완화에 미련을 보인다 해도, 임박한 미국 금리인상은 앞으로 닥칠 글로벌 자본 공급 축소의 명확한 신호다.
주변부가 글로벌 자본공급의 위축 신호를 무시한 대가는 혹독했다. 1994년, 끝없는 번영의 환상에 사로잡혀 미국의 연쇄 금리인상을 방관했던 주변부는 멕시코를 시발로 아시아와 러시아, 동유럽을 휩쓴 가혹한 금융위기에 초토화됐다. 다시 한 번 글로벌 자본의 고갈기를 앞둔 지금, 우리나라를 포함한 신흥국들이 미처 경기회복세를 타지도 못한 가운데서도 부랴부랴 구조조정을 서두르고 있는 이유다.
국내의 구조조정은 이미 연초부터 진행됐다. 1,1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의 위험 제거가 우선이었다. 금리 상승에 대비해 변동금리 대출을 고정금리로 돌리고, 파산 가능성이 높은 저신용자 고금리 대출의 저금리 갈아타기를 지원하는 내용 등이었다. 그러다 구조조정의 축이 급격히 기업 쪽으로 옮겨갔다. 대우조선해양의 막대한 잠재 부실이 드러난 지난 7월이 분수령이 됐다. 상장사 7개 중 1개, 대기업 계열사 5개 중 1개가 ‘좀비기업’이라는 보도가 잇따랐고, “가계부채보다 기업 부실이 더 큰 문제”라는 진단이 부각됐다. 급기야 금융 당국은 은행권에 “연말까지 ‘좀비기업’ 퇴출을 서두르라”는 재촉까지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구조조정의 관건은 부실을 얼마나 빨리 털어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정리하느냐다. 부실 위험을 제거해 위기가 금융시스템으로 번지지 않도록 차단하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손실을 신속히 현실화하고 추가 지원을 단절하면 된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의 지속성장과 신성장동력을 육성하는 게 목적이라면 당장 한계상황인 기업이라고 무조건 죽이는 게 능사는 아닐 것이다.
일각에선 신속한 구조조정을 위해 정부 개입을 없애고 시장원리에 맡기는 게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럴 경우, 기술신용에도 담보를 요구하는 국내 금융시스템의 수준에선 신성장 묘목조차 없이 일단 대량 벌채부터 하고 보자는 실적주의로 치달을 위험이 크다. 기업 구조조정이 아무리 다급해도 ‘멍청한 시장’에 섣불리 칼자루를 넘기는 건 무책임하다. 이럴 때일수록 산업구조 전반을 조망하며 구조조정을 책임지는 정부의 사령탑 기능이 오히려 절실하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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