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해도 알 건 알고 배울 건 배워야죠. 이런 드라마가 또 언제 나오겠습니까?”
안 그래도 힘들고 팍팍한 게 현실인데 웃고 즐겨야 할 TV 드라마까지 심각해서야 되겠냐는 일부 시청자들의 불만이 있다고 하자 배우 지현우(32)의 단호한 대답이 돌아온다. 옆에 앉은 배우 안내상(51)도 거든다. “이번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이 영광입니다. 우리 사회에 한번쯤은 나와야 할 드라마예요.”
6일 경기 남양주의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만난 JTBC 특별기획 ‘송곳’의 출연 배우들은 출연 자체에 자부심을 보였다. 대형마트에서 일하다 하루아침에 해고통보를 받은 비정규직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한다는 결코 가볍지 않은 소재만큼이나 배우들의 마음가짐도 묵직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드라마를 준비하며 배우들의 인식부터 이미 변화가 있었다.
지현우는 극중 푸르미마트의 야채청과파트 과장으로 직원들과 노동조합 결성에 나서는 이수인으로 등장한다. 주로 로맨틱 코미디에 출연해 팬덤을 확대하는 또래 남자 배우들과는 분명 다른 선택이다.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만 해도 노사 문제 같은 건 잘 몰랐어요. 주변에서 심각한 드라마라고 하는데 뭐가 심각하다는 건지도 의문이었죠.”
촬영에 들어가기 전 대형마트를 방문해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광화문 등에서 시위 중인 노동조합을 직접 찾으면서 그는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마치 한약 같은 드라마라고 할까요? 맛은 쓰지만 결국 몸에는 좋은 한약이요. 무거운 면이 있지만 우리 사회를 생각해볼 시간을 주는 드라마인 건 분명해요.”
극중 노동상담소 소장으로 각종 체불, 부당해고 등을 당한 사회적 약자를 돕는 구고신 역의 안내상은 역할의 무게만큼이나 책임감도 무겁다고 털어놓는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했었던 안내상은 “모두 숨어서 자기 권리를 찾는 걸 두려워하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의 화두로 자리잡고 있다”며 “구고신처럼 비정규직 옆에 누군가 있어주기만 해도 세상은 조금씩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소신을 밝혔다.
이수인 과장에게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 지시를 내리는 정민철 부장 역의 배우 김희원(44)은 이날 유일한 ‘사측 대표’로 인터뷰에 나섰다. 영화 ‘아저씨’, 드라마 ‘미생’ 등에 이어 또 악역을 맡았지만 정 부장 역시 노동자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 하는 탓에 시청자들도 “그를 무조건 미워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김희원은 “내가 살기 위해 상대를 공격하고 나를 방어하고 합리화하고 또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내 실제 삶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나를 되돌아보게 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진지하고 무겁던 인터뷰 분위기는 푸르미마트 주임으로 등장하는 슈퍼주니어 예성(32) 덕분에 화기애애해졌다. ‘송곳’으로 첫 연기에 도전하는 예성은 또래 배우 지현우, 현우, 박시환과의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촬영 전 (지)현우가 우리 셋을 카페로 불러 연기에 관한 책을 선물해줬어요. 그러면서 이번 드라마에 여자 배우도 없고 내용도 어려우니 우리끼리 똘똘 뭉쳐 정말 열심히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네 명이 모여 결의를 다지며 준비했습니다.(웃음)”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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