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클라호마대학 리사 펀넬 교수가 007 영화의 본드 걸 캐릭터를 분석한 ‘오직 그의 시선을 향한:제임스 본드의 여자들’이라는 책을 최근 냈다.
펀넬 교수는 5일 CNN과 인터뷰에서 “1960년대 007 영화만 해도 여자 주인공의 역할이 정형화하지 않고 지금보다 훨씬 다양했다”면서 “본드의 남성성에 도전하는 인물로 그려졌다”고 말했다. ‘골드 핑거’에 출연한 아너 블랙먼, ‘여왕 폐하 대작전’에 나온 다이애나 리그와 같은 여배우는 영국 TV 첩보물 ‘어벤저스’에서 남자 주인공인 영국 첩보원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능동적인 모습 그대로 007에서도 보여줬다고 펀넬 교수는 봤다.
펀넬 교수는 ‘007 위기일발’에서 살인 용역 단체 스펙터의 킬러로 끝까지 007을 죽이려 드는 로사 클레브, ‘옥토퍼시’에서 본드의 적으로 나왔다가 나중에 본드를 돕는 머드 애덤스 같은 이들도 자신을 돌볼 줄 아는 독립적인 여성으로 그려졌다고 덧붙였다.
말레이시아 출신 중화권 여배우 양쯔충(‘두 번 살다’), 할리 베리(‘다이 어나더 데이’) 등 007 최근작에 등장한 이들도 적극적이며 지적인 여성으로 출연해 섹시함으로만 무장한 본드 걸의 이미지를 새롭게 바꿔놓았다. 본드의 소속인 영국 해외정보국(MI6)에서 그의 상사로 출연한 M과 M의 비서인 이븐 머니페니도 007 시리즈에서 여성 배역의 진화를 보여준다.
영국 배우 주디 덴치는 1995년 시리즈 17번째 작품인 ‘골든 아이’부터 그간 남자 배우가 맡던 M을 연기했다. 펀넬 교수는 007의 상사로 여배우 덴치가 등장한 점과 덴치가 007을 향해 “세상은 바뀌었는데 자네는 여전히 과거에 묻혀 사는군” 같은 대사를 통해 007 시리즈에서 여성성의 진보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머니페니의 비중도, 이를 연기하는 배우의 목소리도 과거와 비교해 달라졌다. 2012년 ‘스카이 폴’에 이어 ‘스펙터’에서 머니페니로 분한 흑인 여배우 나오미 해리스는 2012년 미국 주간지 타임과 인터뷰에서 “본드 걸은 과거처럼 정형화한 여성 캐릭터가 아니라 뭐든지 할 수 있는 배역”이라고 말했다.
펀넬 교수는 최근 개봉한 ‘스펙터’가 흥행 기록 행진을 벌이는 원인이 영화 속 여성의 비중 증대에 있다고 보면서 본드와 함께 모험에 휘말린 본드 걸이 지적 능력과, 본능, 신체적인 능력 등을 본드에게 제공함으로써 대등한 지위로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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