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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와 상념의 끝을 따라 선회하는 상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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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와 상념의 끝을 따라 선회하는 상상들

입력
2015.11.0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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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소설집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을 펴낸 김종옥 소설가. 문학동네 제공 ⓒ이천희
첫 소설집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을 펴낸 김종옥 소설가. 문학동네 제공 ⓒ이천희

소설은 어떤 일이 끝난 뒤에야 시작된다. 소설의 문장이 과거형인 까닭은 거기에 있다. 모든 소설은 사후적(事後的)이다. 그렇기에 소설에 담기는 인간의 주된 감정은 후회(後悔)이다. 김종옥의 표제작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에 등장하는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날 나는 지은에게 만일 우리가 헤어진다면 서로에게 한 일 때문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 때문일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희수하고도 헤어졌다. 내가 그러한 일들을 후회하는가? 그러지 않았다면, 아아, 그러지 않을 수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까? 정말로 나는 상상한다. 요즘 들어 매일 밤 그랬던 것 같다.”

분량의 여유도 많지 않은 글에 소설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까닭은 이것이 김종옥 단편의 의미와 형식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긴요한 문장이기 때문이다. 먼저,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말해보자.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이 한번뿐이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지극히 현재적인 감정을 느끼면서도, 더 완전한 사랑이,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더 행복한 결합이 다른 어떤 곳에 있지는 않은 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안해한다. 언제나 그렇지만,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고 아직 오지 않은 일을 실현시키는 구체적인 힘이다. ‘나’는, ‘당신’은, 아니 ‘우리’는, 더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았지만, 무언가를 더 하지 않았지만, 섣불리 예측하고 그 예상을 현실의 행동으로 옮겨버린다. 그렇게 인간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간과 헤어지고, 예상했던 미래와 예상처럼 되지 않은 현재 사이의 간격에서 살아간다. 후회는 그 간격의 거리이며, 고통에 찬 상념 속에서 그 사이를 오고 가는 인간의 탄식이다.

누군가는 후회 없이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고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옳지 않다.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후회 없는 삶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누자면 김종옥은 사회적 성공의 반대편에 서 있는 ‘후회’하는 사람이다. 그것도 매일 밤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천천히 되짚으며 회한에 빠지는 사람이다. 이러한 반복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김종옥 단편의 특정한 형식을 만들기 때문이다. 매일 밤 반복되는 후회는 김종옥 소설에서 기억의 발자국을 따라 같은 공간을 맴도는 모습으로, 오고가다를 반복하는 신호대기의 순간마다 점멸하는 기억으로 등장한다. 말하자면,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에 담긴 대부분의 단편은 후회와 그 상념의 끝을 따라 선회하는 상상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후회’에 관해서라면 영화 ‘서유기-선리기연’의 주성치보다 더 아련하게 말을 할 자신이 없기에 그 대사를 옮겨 적는 것으로 글을 끝내는 것이 좋겠다. “전 과거에 사랑을 앞에 두고 아끼지 못하고, 잃은 후에 큰 후회를 했습니다. 인간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후회하는 것입니다. 다시 기회를 준다면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겠습니다.” 아마, 김종옥도 이 영화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서희원ㆍ문학평론가

◆작가 약력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201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거리의 마술사’가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이듬해 같은 작품으로 제4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첫 소설집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문학동네)은 사건의 인과를 뒤흔들고 기억의 허구성을 의심케하는 열두 편의 단편이 실렸다.

김종옥 첫 소설집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
김종옥 첫 소설집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

책 속 한 문장

어떤 사람들은 삶 속에서 죽음을 살죠. 그 사람은 삶 속에서 죽음을 봐요. 그러나 남우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 애는 죽음 속에서 삶을 보는 애였죠.

-‘거리의 마술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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