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새로운 다윈’으로 불린 프랑스 출신 석학 르네 지라르가 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의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스탠퍼드대학이 밝혔다. 91세.
역사학, 문학비평, 철학 등 다양한 학문을 넘나든 지라르는 1923년 프랑스 아비뇽에서 태어나 1947년 파리 국립고문서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인디애나대로 건너가 생애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다.
원래 전공은 역사학이었으나, 미국 대학에서 프랑스 어문학을 가르치면서 문학비평가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인디애나대, 듀크대, 브린 마워 칼리지, 존스홉킨스대를 거쳐 1981년 스탠퍼드대에서 불문학 교수로 임용돼 30여 권의 서적을 집필했다.
첫 작품인 ‘속임수, 욕망 그리고 소설’(1961년)과 ‘폭력과 성스러움’(1972년), ‘창세로부터 은폐돼온 일들’(1978년)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스탠퍼드대는 성명을 내 “그의 저술 세계는 역사학, 인류학, 사회학, 철학, 종교, 심리학, 신학 등 모든 영역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라르는 특히 ‘갈등과 폭력의 원인’ ‘인간 행동에서 모방의 역할’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고 AFP통신은 평했다. 스탠퍼드대는 “그의 관심은 유행에 좌우되지 않았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들에 기울어졌다”고 밝혔다. 이런 학술적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지난 2005년 3월 단 40명만 받아들이는 아카데미 프랑세즈(프랑스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스탠퍼드대 동교 교수이자 프랑스의 저명 철학자인 미셸 세르는 그가 프랑스학술원 회원으로 뽑힐 때 “인문학의 새로운 다윈”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지라르의 별세 소식에 고국인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그가 결코 만족하지 않고 열정적인 지성이었다는 점을 온 국민이 알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고 AFP는 전했다. 유족으로는 64년간 함께 산 아내 마르타와 세 자녀가 있다.
‘로쟈’라는 필명의 서평가 이현우씨는 오래 전 한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이 지라르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게 해준 책으로 1980년대 후반에 나온 문학평론가 김현의 ‘르네 지라르 혹은 폭력의 구조’(나남 발행)를 꼽았다. 이씨는 이글에서 “김현이 파악한 지라르 이론의 핵심은 ‘폭력’이고 ‘폭력의 구조’였다”며 “‘모방욕망’과 ‘희생양’이라는 두 키워드를 그는 ‘폭력의 구조’로 묶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은 이 책 글 머리에서 “욕망은 폭력을 낳고, 폭력은 종교를 낳는다! 그 수태ㆍ분만의 과정이 지라르에겐 너무나 자명하고 투명하다. 그 투명성과 자명성이 지라르 이론의 검증 결과를 불안 속에 기다리게 만들지만, 거기에 매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거기에는 더구나, 1980년 초의 폭력의 의미를 물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밑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썼다고 이씨는 소개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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