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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차별 받는 경계인 자이니치(在日)

입력
2015.11.0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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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황교안 총리가 “유사시에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일본 자위대의 입국을 허용하겠다고 말해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20일에 열린 한일 국방장관회담에서 한민구 국방 장관은 “북한은 헌법상 우리 영토로 (자위대가)북한에 들어갈 때는 우리 정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일본은 1991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이상 북한도 국제법상 주권국가라는 상황을 적용, 북한이 일본을 미사일 등으로 공격할 경우 한국의 동의 없이 보복 공격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뜬금 없는 황 총리의 발언은 어이없지만, 자위대 관련한 한일 간의 치열한 공방을 보면서 필자는 군사문제와는 다른 측면의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일본정부가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했는가.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정부는 한국만 국가로 인정하고 국교를 정상화하지 않은 북한은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재일 조선인에게도 차등적 법률 적용을 해 외국인 등록증명서에 한국은 국적이지만 조선은 국적이 아닌 ‘부호(符號)’라는 희한한 제도를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원래의 조선적(籍)에서 한국 국적으로 바꾸지 않은 재일조선인(이들은 제도상 무국적이다)을 일본정부는 암묵적으로 북한 국적처럼 취급해왔다. 예컨대 북한의 핵실험 이후 대북제재를 가하면서 “북조선 국적을 가진 사람의 입국 금지, 단 재일조선인은 제외”라는 등의 모호한 표현으로 재일 조선적과 북한 국적을 동일시했다. 같은 맥락에서 재일조선인 민족학교에 대한 엄격한 대응도 대북 보복조치의 일환이었다.

그럼 재일조선인에 대한 한국정부의 태도는 어떨까? 다를 바 없다. ‘조선적’을 가진 재일조선인이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임시 여권인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정부의 명확한 방침이 아니라서 개인에 따라 조건이 달라진다.

일본에서 초기 한류 형성에 공이 큰 영화제작자 이봉우(현 한국적)는 1994년 영화 ‘서편제’의 배급권을 사기 위해 처음 한국 행을 결심한다. 여행증명서가 발급되었지만 한국 체류는 사흘뿐이라는 조건이었다. 이어 그는 김포공항에서 입국 스탬프도 찍지 못한 채 신라호텔에서 안전기획부 조사를 받았다. 조총련 간부였던 아버지에 관한 정보와 내한 목적에 대한 조사였다. 영화 판권 교섭을 위해 간 태흥영화사에도 이미 ‘요주의 인물’이라는 안기부의 연락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김대중정부의 남북공동선언 이후 유연하게 변했다. 그렇지만 마냥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노무현정부인 2003년에 재일연구자 조경희(현 성공회대) 역시 조선적이라는 이유로 서울에서 열린 학술회의에 참가하지 못한 적이 있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물거품이 되어 조선적에 대한 여행증명서 발급은 거의 중단되었으며 ‘한국적’이어도 여권 발급을 거부하거나 심지어 한국적으로 변경조차 거부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이는 당시의 대북 및 대일 관계 악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재일조선인의 한국 입국 허가가 남북 관계뿐 아니라 한일 관계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다.

황 총리의 자위대 입국 허가와 관련된 발언이 시끄럽던 날 재일작가 김석범이 입국 거부를 당했다. 제주 4ㆍ3사건을 다룬 장편소설 ‘화산도’의 한국어 완역을 기념한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한 입국이었다. 문제가 되었던 것은 지난 4월 제주4ㆍ3평화상 수상 소감에서 이승만정부의 정통성을 비판하고 “4ㆍ3사건은 남한 단독정부가 아닌 통일정부를 원한 민중봉기”라는 발언 때문이라 한다.

재일조선인의 이동의 자유(입출국 허가)를 담보로 벌어지는 한일 간의 역사 해석과 힘의 줄다리기. 이 그로테스크한 역사는 이들에게 또 한 번의 상처를 남긴다. 온갖 차별과 멸시를 견뎌낸 이들의 삶에 조총련과 민단 그리고 북한과 한국 사이에서 무국적이 되어버린 이들의 생채기에 또 소금을 뿌려댄다.

고영란 일본 니혼대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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