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늘 천변만화하려는 욕망으로 고통 받는다. 전성태라고 아니었으랴. 오랫동안 그에게 부여된 리얼리즘 작가라는 표찰은 자긍보다는 족쇄였을 것이다. ‘두 번의 자화상’은 그의 농익은 리얼리즘적 탐색의 깊이를 보여주는 동시에 새로운 변화의 폭을 보여주는 작품집이다. 그래서 이 책은 두 번의 자화상이자 두 겹의 자화상이다.
자화상이라니 우선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를 처음 만난 사람은 누구나 저 몽타주가 어느 나라 소속인가를 잠깐 치열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러면 그가 충청도와 전라도 사투리가 적절히 섞인 억양으로 이렇게 일러준다. 실은 우리 어머니가 루마니아 사람이어라. 그제야 사람들은 무릎을 치며 감탄한다. 아, 루마니아! 그들 대부분은 실제로 루마니아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직도 순진한 누군가는 그의 어머니가 루마니아 여인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전성태 소설은 자근자근 재미있다. 그의 단편 ‘망향의 집’에는 북한에서 몰래 성묘 한번 갔던 일 때문에 평생 고초를 겪고 인생이 끝장난 노인이 등장하는데, 이 비극적인 내용이 슬프도록 웃긴 것은, 주변의 실향민 노인들이 이구동성으로 그 노인을 ‘참 복 받은 양반’이라고 결론짓는 유머 덕분이다. 묵직한 주제에 유머를 작동시켜 절묘한 균형감각을 취하는 능란함은 ‘성묘’에서도 빛난다. ‘국화를 안고’는 한 여성 화자가 늘 돌던 산책 코스를 한 바퀴 도는 이야기인데, 그 단순한 행로에 장편에 육박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래서 아껴 읽게 되고, 읽고 나서도 한동안 여운이 길게 남는다.
어떤 시각에서 보면 그의 소설의 몇몇 구도가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리라. 그러나 정작 그의 소설 안으로 한발 들어서고 나면, 인물과 대사와 문장과 서사가 끈적하게 뒤섞이면서 설정의 인위성이 흔적 없이 녹아 내리는 체험을 하게 된다. 그의 글에는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존재들을 무한히 끌어당기는 구심력이 있어 독자들마저 한통속으로 연대시킨다. 이건 기교보다 힘이다. 인내와 감내의 힘이다. 얼마나 오래 귀 기울여 들었으면, 얼마나 오래 거기 몸담고 있었으면 이런 게 들리고 이런 게 보였을까.
마지막으로 책의 가장 앞자리에 놓인 ‘소풍’의 색다른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소설은 평범한 가족의 소풍 이야기이다. 그런데 괜찮다고, 아무 문제 없다고 말하는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면 가슴이 사막처럼 마르고 소름이 돋는다. 화사한 소풍 사진 뒤에 어두운 먹구름이 음각되어 있는 두 겹의 사진을 보는 듯하다. 그의 소설에는 현실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고, 유머와 온기와 힘이 있다. 그런데 이제 감각까지 장착했다. 전성태는 다 가지려는가. 다 가져도 좋다, 이토록 오래 참고 기다려온 작가라면.
권여선ㆍ소설가
◆작가 약력
1969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94년 실천문학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매향(埋香)’ ‘국경을 넘는 일’ ‘늑대’, 장편 ‘여자 이발사’가 있다. 세 번째 소설집 ‘두 번의 자화상’에는 등단 20주년을 맞은 작가가 문학의 전환점을 지나며 써내려 간 소설 열두 편이 담겼다.
책 속 한 문장
어머니를 보고 있노라면 기억은 아주 물리적인 경계들에 쌓여 있는 것 같다. 구월의 기억이 지워지고 팔월의 기억이 지워졌다. 칠십 세의 기억이 지워지고 육십 세의 기억이 사라졌다. 어미로서의 기억이 사라지고 신부의 기억이 사라진 후 친정의 기억마저 지워졌다.
? ‘이야기를 돌려드리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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