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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소가 필요해

입력
2015.11.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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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피맛골. 고관대작들 행차 때마다 엎드려 사열하는 일에 넌더리 난 주민들이 말을 피해 그 길로 다녔다. 지금은 갖가지 음식점들이 모여 있다. 얼마 전, 종로 나갔다가 늦은 끼니를 해결하려고 혼자 들렀다. 메밀국수 한 그릇 먹고 대로로 나오면서 그 길의 과거를 생각했다. 100년 전만 해도 우마가 다니던 길이었을 거다. 마천루도 자동차도 없었을 거다. 그랬더니 느닷없이 소의 환영 같은 게 보였다. 피맛골을 나와 보신각 쪽으로 느릿느릿, 그러나 힘차게 걸어가는 소. 몸이 붉었다. 시인 김지하는 이중섭의 소에 대해 “이중섭 소는 우리 소 아니다. 조선엔 그런 미친 소 없다”고 매도했지만, 조선의 황소든 스페인의 투우든 종로 한복판에서 맨몸으로 돌진하는 소를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장관일 것 같았다. 잔말도 없고, 간교도 없으며 오로지 자기 정념과 투지에만 몸 닳아 오매불망 직진하는 소. 의도된 착시든 허망한 바람이든 그런 소가 쿵쿵 발놀림하며 뇌리를 밟고 가는 게 황홀했다. 뭔가 답답증에 차있거나 울분이 넘친 탓일 수도, 만사가 잔나비 눈속임에 요분질 당하는 기분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소를 떠올리니 기분 좋았다. 소의 등에 올라 소리치고 싶었다. 산수풍경화처럼 가느다란 피리소리가 아니라 전자기타라도 둘러멘 채 고 데시벨 하이허스키로 하드코어 메탈이라도 질러대며. 소가 필요하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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