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현의 ‘미인’ 기타 리프를 처음 듣고 ‘쓰고이! 난데 고레!’(굉장해! 이게 뭐지!)라고 혼자 말했어요. 그의 음악엔 아시아적인 뭔가가 있어요.”
일본 록 밴드 곱창전골의 보컬 기타리스트 사토 유키에(51)는 4일 서울 동교동의 한 일식 주점 겸 라이브클럽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가장 좋아하는 한국 노래가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곱창전골은 사토가 1995년 음반 구입 차 한국에 들렀다 신중현과 산울림의 노래에 감동해 만든 밴드다. 멤버 전부 일본인이지만 한국말로 한국의 삶을 노래한다. MBC ‘무한도전’에 출연해 유명해진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도 곱창전골의 창단 멤버였다. 그 역시 사토가 한국에서 들고 온 음반을 듣고 나서 한국 록 음악에 빠졌다고 한다. 사토는 “너무 대단한 음악이어서 당시 사이키델릭 록을 좋아하던 친구들에게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한번 들어보라고 돌렸다”며 그랬더니 “하세가와가 듣고 ‘와, 장난 아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곱창전골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는 밴드다. 일본에서 재일동포 등을 상대로 공연하다 호응이 좋아 한국에서 1999년 첫 앨범을 냈다. 결성 4년 만에 앨범을 냈던 건 “애초부터 취미로 했던 밴드”여서다. 2006년 한국인 여성과 결혼한 사토가 서울에서 대부분 지내는 반면 드러머 이토 고키(46)와 베이시스트 아카이 고지로(43)는 도쿄에서 살면서 공연이 있을 때만 서울에 머문다.
곱창전골이라는 이름은 한국적인 밴드명을 찾다 ‘메뉴판’에서 고른 것이다. “내가 좋아할 것 같은 음식. 그땐 아직 먹어보기 전이었는데 곱창전골이 맛있을 것 같아서 그걸로 이름을 정했죠.” 10년 넘게 한국에서 지내며 “한국 음식 전문가가 됐다”는 사토는 2년 전 일본에서 ‘한식 B급 음식대전’이라는 책도 했다. 김밥, 라면, 냉면, 짜장면에서부터 제주도, 부산, 전남 등 지역 음식, 이태원의 세계 음식, 한국식 일본요리까지 250쪽에 한국 음식을 망라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묻자 “도가니탕, 개불, 옷닭, 짬뽕…”을 나열하더니 “아, 홍어! 물론 삭힌 홍어를 가장 좋아한다”며 크게 웃었다. 지난해 발표한 4집 제목도 ‘메뉴판’인데 모든 노래 제목에도 밴드 이름인 곱창전골부터 해장국, 홍어, 노가리, 도루묵, 묵은지, 빈대떡 등 음식 이름이 등장한다. 그는 “비틀스의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나 이후의 ‘토미’ 같은 콘셉트 앨범”이라며 껄껄 웃었다.
한국에서 활동하며 한국인과 가족이 됐지만 사토는 “한국인이 되려면 멀었다”고 말한다. 일본인이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어’ ‘외’ ‘의’ 발음을 곧잘 할 만큼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지만 여전히 일본인 억양이 남아 있다. 한일 정치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도 불편하다. 아베 일본 총리의 역사 인식에 대해 물으니 “일본에도 아베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이런 자리에서 말하면 일본을 대표하는 사람처럼 받아들일 수 있으니 조심하게 된다”고 말을 아꼈다. “우린 우드스톡 세대니까 사랑과 평화를 외칠 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곱창전골은 결성 20주년을 맞아 6일 광주 보헤미안홀, 7일 서울 앰프라이브클럽에서 기념공연을 한다. 비자 문제와 멤버 변동 등 순탄하지 않았던 세월을 팬들과 자축하는 자리다. 밴드의 유일한 원년 멤버인 사토는 “취미로 시작한 밴드여서 20년까지 이어갈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며 “멈추지 않고 계속 하다 보니 세월이 금세 지나갔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는 하세가와 요헤이와 노나카 다카시 등 예전 멤버들도 함께 한다.
사토는 만들어놓은 곡도 많고 만들고 싶은 앨범도 많다면서 “30, 40주년이 되도록 계속 밴드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한국에서 인디 밴드로 살아가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한일 우정이다. “일본에서 ‘혐한’을 말하는 사람도 한국인 친구가 있다면 한국을 싫어하지 않을 겁니다. 한국인도 마찬가지고요. 앞으로도 계속 한국과 일본의 평화와 우정을 위해 노래하고 싶습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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