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는 우리 사회와 문화를 판독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다.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 386세대와 신세대 등은 그 대표적인 개념들이다. 세대론의 장점은 이렇게 명명된 세대가 갖는 사회ㆍ문화적 특성과 그들이 주도하는 변화를 날카롭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세대 변수를 과도하게 강조할 경우 계급ㆍ지역과 같은 변수가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문제를 갖는다.
최근 흥미로운 것은 21세기에 들어와 나타난 젊은 세대들의 명명이다. 내 시선에 잡힌 세 유형의 세대는 미국의 ‘밀레니얼(Millennial) 세대’, 일본의 ‘사토리(さとり) 세대’, 중국의 ‘바링허우(八零後) 세대’다.
밀레니얼 세대는 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에 출생한 세대다. 이 세대의 특징은 컴퓨터 등 정보통신기술에 익숙하고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소통하며 협력한다는 데 있다. 인터넷과 함께 성장한 ‘디지털 네이티브’가 바로 이들이다. 사토리 세대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후반 사이에 태어난 세대다. 이 세대의 특징은 안정된 직장은 물론 출세에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깨달음’을 뜻하는 사토리란 말이 보여주듯 물질적 욕망에 달관한 세대가 바로 이들이다. 바링허우 세대는 덩샤오핑의 ‘한 가구 한 자녀 정책’ 실시 이후인 1980년대에 출생한 세대다. 이 세대의 특징은 외동이기 때문에 조부ㆍ조모ㆍ외조부ㆍ외조모ㆍ아버지ㆍ어머니로부터 모두 경제적 지원을 받는, 이른바 ‘식스 포켓’의 풍족함을 누려왔다는 데 있다. 중국식 개인주의를 선도하는 ‘샤오황디(小皇帝)’ 또는 ‘샤오궁주(小公主)’가 바로 이들이다.
세대의 개념화에 내가 관심을 갖는 까닭은 세 유형의 세대론에 그 사회의 경제적 변동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이 정보통신기술에 기반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온 미국 경제에 대응한다면, 사토리 세대의 출현은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20년’의 일본 경제에 상응한다. 그리고 바링허우 세대의 도전은 1980년대 개혁ㆍ개방 이후 급속히 부상해온 중국 경제에 조응한다.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 아래 성장했다고 해서 밀레니얼 세대와 바링허우 세대가 늘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밀레니얼 세대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증가한 청년실업에 직면해 있다면, 바링허우 세대 역시 최근 취업난과 치솟는 집값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대론이 갖는 함정의 하나는 전체를 아우르는 동질성을 강조한 나머지 세대 내 분화를 과소평가한다는 점이다. 밀레니얼 세대든, 바링허우 세대든 이 세대 안에는 위너 그룹과 루저 그룹이 존재한다.
우리 사회에서 이 세 유형의 세대에 대응하는 개념이 ‘88만원 세대’다. 우석훈과 박권일이 주조한 88만원 세대의 의미는 이미 널리 알려져서 재론할 필요가 없다. 이 88만원 세대는 최근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N포 세대’로 변화해 왔다. 밀레니얼ㆍ사토리ㆍ바링허우 세대와 비교할 때 N포 세대의 처지가 가장 딱해 보여 기성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갖는 안타까움이 크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경제적 발전에 대응하는 세대의 변화 과정이다. 중국 바링허우 세대는 1990년대 우리 사회 신세대와 유사하며, 우리의 N포 세대가 일본 사토리 세대와 같은 상태로 나아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사토리 세대는 한편으론 득도한 세대지만, 다른 한편으론 자포자기한 세대다. 패기만만해야 할 젊은 세대가 돈과 명예를 초월해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 깨달음이 강요된 깨달음이라는 점에서 비극적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사토리’와 ‘88만원’에서 볼 수 있듯 세대의 특성을 드러내는 현상의 일차적인 원인 제공자가 기성 세대와 기성 제도라는 점이다.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선 젊은 세대에게 현실을 바꾸려는 도전 정신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지적과 비판이 있다. 하지만 이에 앞서 기성 세대가 먼저 그런 현실을 만들어온 책임을 자각하고, 문제들을 해결할 제도 개혁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 다음 세대에게 가져야 할 기성 세대의 책임의식은 무한한 법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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