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위험ㆍ중수익’으로 투자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주가연계증권(ELS)’이 최근 몇 달 새 ‘고위험 상품’으로 둔갑하면서 투자자들을 난처하게 하고 있습니다.
ELS는 기초자산이 일정 기준 이하로만 떨어지지 않으면 투자시점에 확정한 금리를 제공하는 파생결합증권입니다. 주식, 채권에 분산투자하며 6~7%의 수익률을 내기 때문에 저금리 시대 중위험ㆍ중수익 상품으로 각광받았죠. 4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ELS 발행잔액은 47조3,453억원으로 작년 상반기(27조6,177억원)보다 71.4% 증가했습니다. 이는 2013년 연간 발행액(45조7,159억원)을 웃도는 수준입니다.
ELS의 인기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 건 올해 5월입니다. ELS의 기초자산이 되는 국내외 지수들이 바닥을 치며 속속 손실을 보기 시작하자 당국이 이를 ‘고위험’ 상품으로 분류할 것을 업계에 권고하고 나선 겁니다. 말이 권고이지 사실상 압박이나 다름없는데요. 금융회사들은 요즘 혹시나 언론 보도자료나 기사에 인용되는 관계자 발언에 ‘중위험’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는 않는지 촉각을 곤두세울 정도입니다.
ELS는 상품마다 ‘녹인 배리어’라는 손실 기준선이 있는데, 기초자산이 이 선 이하로 떨어지면 그 때부터 원금손실이 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원금을 모두 날릴 수도 있습니다. 실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상환된 ELS 원금 5조1,000억원 가운데 6.5%는 손실이 난 채로 상환됐고, 순손실액은 1조5,000억원에 이릅니다.
올 들어서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더 악화되면서 손실을 본 ELS가 더 가파르게 늘어났는데요.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금감당국의 권고 조치가 시의적절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자칫 개인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는 만큼, 당국 입장에서 뒤늦게나마 제동을 걸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을 겁니다.
문제는 금융당국조차도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건데요. 당국이 2014년 발표한 ‘파생상품 발전방안’ 보도자료를 보면 ‘ELS가 저금리 기조 하에서 중위험ㆍ중수익 상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는 입장을 180도 뒤집은 거죠.
아무리 투자란 본인의 책임 하에 하는 것이라지만, ‘중위험’ 상품인 것으로만 믿고 ELS에 투자해 온 이들로선 몹시 당혹스럽습니다. ELS 투자로 손실을 본 투자자라면 판촉에만 열을 올린 금융회사나, 이를 묵인해 온 당국이나 모두 야속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김진주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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