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작 ‘오네긴’으로 6~8일 예술의전당 무대 올라

“은퇴는 은퇴다. 발레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이번 공연은 저를 사랑해준 한국의 팬들께 감사하는 의미에서 오르는 무대다.”
한국 최고의 프리마 발레리나, 강수진(48) 국립발레단 단장의 선언에는 미련도 아쉬움도 없었다. 1985년 18살 나이로 스위스 로잔 국제발레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에 오른 지 꼭 30년 만에, 존 크랑코의 대표작 ‘오네긴’을 마지막으로 무용수로서 이별을 예고했다. 6~8일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내년 7월 22일에는 독일에서 공연을 갖고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도 공식 은퇴한다. 4일 기자들과 만난 강수진은 “당연히 더 무대에 설 수 있지만 그러기엔 작품에 대한 존경심이 너무 크고,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이 더 크다”고 말했다. “(국립발레단에) 잘하는 무용수들이 많은데, 제가 무대에 서면 그들이 무대에 설 기회를 뺏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동안 은퇴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작년 국립발레단장을 맡으면서 처음으로 은퇴를 생각했어요. 단장으로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다행스럽기도 해요. 행정도 하고, 단원들도 가르치느라 밤에 잠을 못 자니까요. 그렇지만 인생을 한번 사는데 이렇게 사는 게 너무 감사합니다. 무덤에 가면 계속 잘 것 아닌가요.”

1986년 19살 나이로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당시 동양인 최연소 무용수로 입단한 그는 한국 발레의 산 역사다. 1991년 솔리스트, 1996년 프리마발레리나로 차곡차곡 이력을 쌓은 그는 1999년 동양인 최초로 무용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무용수로 뽑혔고, 그 해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도 받았다. 2007년에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50년 역사상 단 4명에게만 주어진 ‘캄머 탠처린(궁중 무용가)’에 선정됐다.

이번 공연에 맞춰 내한한 리드 앤더슨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예술감독은 “강수진과 20년간 호흡을 맞췄다. 전설적인 안무가 존 크랑코는 생전 ‘예술가에게는 고유의 특별함(it)이 있는데, 타고 나는 것이지 노력으로 습득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강수진에게는 그 특별함이 있다”며 “특별함을 발견하는 엄청난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무용수였다”고 평했다.
은퇴작 ‘오네긴’은 ‘까멜리아 레이디’, ‘로미오와 줄리엣’과 함께 강수진 드라마 발레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러시아 문호 푸슈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을 원작으로 자유분방하고 오만한 남자 오네긴과 순진한 소녀 타티아나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다. “96년 처음 이 작품을 연기했을 때부터 사랑에 빠졌고, 가면 갈수록 제가 배우는 작품”이라고 소개한 강수진은 “어떤 작품은 하면 어느 순간 그만 둬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기가 있고, 그래서 하나씩 출연을 고사해왔다. 저에게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는 작품으로 이 작품 이상은 없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주역 무용수 제이슨 레일리가 3회 모두 강수진과 함께 할 예정이다.

강 단장은 ‘강철 나비’라는 별명답게 30년 무용인생 마감을 앞두고도 담담했다. “발레리나로서 마지막 무대라고 하지만 그날(마지막 공연)이 돼봐야 심정이 어떨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끝이지만 시작이라는 느낌이 벌써 들어요. 은퇴 다음 날도 계속 일하고 있을 테니까요.”
은퇴공연은 2주일 전에 매진됐다. 팬들의 문의 쇄도에 공연기획사 크레디아는 6~8일 공연 1시간 30분 전부터 시야장애석 180여석을 현장 판매하기로 했다. (02)580-1300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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