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는 2013년 수소연료전지차(FCV)를 세계 최초로 양산했다. 하지만 국내 판매 성적표를 보면 세계 최초라는 말이 무색하다. 2년간 고작 50대 판매에 그쳤기 때문이다.
반면 지난해 말 양산에 성공한 일본 토요타는 현지에서 FCV ‘미라이’를 1년 만에 300대나 팔았다. 연평균 판매량으로 보면 한국 25 대 일본 300으로 차이가 무려 12배다.
이처럼 극심한 격차는 정부에서 비롯됐다. 일본 내 미라이 가격은 약 7,000만원이지만 정부가 2,000만원, 지방자치단체에서 1,000만원을 지원해 일반 소비자들이 4,000만원에 구입한다.
현대차의 투싼 FCV는 8,500만원이다. 그런데 일반 소비자들에게 할인 혜택이나 지원금이 전혀 없다. 정부나 지자체가 관용차로 구입할 경우에만 정부에서 2,750만원을 지원해 준다. 이러니 개인들에게 팔릴 턱이 없다.
FCV 운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소충전소도 우리는 전국에 고작 11개뿐이다. 반면 일본은 전국 100여곳에 수소충전소를 두고 있다.
토요타에 이어 혼다와 렉서스도 조만간 FCV를 양산할 예정이어서 FCV의 종주국 한국과 후발주자의 역전 현상은 갈수록 더 벌어질 전망이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2020년 도쿄올림픽 행사 차량으로 FCV를 대거 채택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일본은 하수 찌꺼기를 분해하거나 풍력발전을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최근 일본 자동차업체들은 도쿄모터쇼에서 FCV로 만든 전기를 가정에 공급하는 기술까지 선보였다. 일본은 내수에서 거둔 수익을 기술 개발에 재투자해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선순환의 고리가 이미 형성됐다. 우리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FCV가 일본의 중요한 미래 성장동력이 된 셈이다.
수소와 산소를 결합시켜 전기를 만드는 FCV는 배기가스 대신 물이 생성될 뿐이어서 ‘궁극의 친환경 차’로 꼽힌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15년 후 세계 수소연료시장 규모를 400조원대로 추정한다.
정부는 올해 안에 FCV 보급을 확대하기 위한 중ㆍ장기 계획을 발표하기로 했지만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선도기술의 주도권을 빼앗기도록 방치한 정부의 늑장과 무능력이 부끄럽다.
허정헌 산업부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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