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분 좋은 햇살이 화창하게 비췄던 2010년의 가을. 미국 캘리포니아의 와인 천국 나파 밸리의 욘트빌(Yountville)이라는 작은 마을에 위치한 레스토랑 부숑(Bouchon)에서 일할 때의 이야기이다. 그곳은 미슐랭 3 스타에 빛나는 전설적인 셰프 토마스 켈러(Thomas Keller)가 운영하는 네 개의 레스토랑 중 하나. 그 당시 난 CDP(수석조리장ㆍChef de Partie)로 일하는 중이었고, 매일 저녁 250명이 넘는 손님들의 음식을 서비스하는 라인의 4명의 셰프 중 하나였다. 하루 14시간 이상의 근무와 완벽한 음식에 대한 집념, 이미 땅바닥까지 내려온 주문지와 끊임없이 새로 들어오는 주문을 외치는 셰프…. 내가 맡은 파트의 음식을 완벽하게 그리고 빠르게 내보내야 한다는 압박과 스트레스는 엄청났다. 빠른 걸음으로 주방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일하는 통에 매일 구멍 나는 양말을 버려가며 하루 하루를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가끔 돌아오는 쉬는 날이면 혼자 덩그러니 방에 앉아 밀려드는 한국과 한국 음식에 대한 향수에 시달렸다. 생뚱맞게도 한밤중 즐겨 먹었던 야식인 배달 치킨에 대한 그리움이 특히 컸다.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치킨을 어지간히 좋아했었나 보다. 그러던 중, 토마스 켈러 셰프의 새로운 레스토랑이었던 애드혹(Ad Hoc)에서 버터밀크 프라이드 치킨(Buttermilk Fried Chicken)이 메인 디시로 나오는 날이 내 휴무 다음날인 것을 확인하게 됐다. 미국인들에게 프라이드 치킨이 익숙한 요리이긴 하지만 애드혹의 프라이드 치킨은 특별했다. 이 메뉴가 서빙되는 날은 언제나 예약이 오픈되자마자 꽉 찰 정도로 인기였다. 참고로 애드혹은 매일 메뉴가 바뀌는 네 가지 코스의 가정식 메뉴를, 일주일에 5일, 디너만 서빙했다.
나는 함께 일하는 셰프들에게 부탁해 힘겹게 예약을 하고, 마침내 기쁜 마음으로 애드혹을 방문했다. 전채요리를 먹고 드디어 메인 디시로 나온 치킨. 튀김옷은 바삭하고 여러 가지 스파이스가 느껴졌다. 꿀과 허브, 레몬이 들어간 소금물에 절인 닭은 한 입 먹은 뒤 입 안에 살짝 남아있는 간간한 풍미와 함께 진한 감동을 자아냈다. 함께 서빙된 스리라차(동남아의 칠리소스) 케첩과 랜치 소스, 그리고 꿀. 여기에 바삭하게 튀겨진 치킨을 찍어먹으며 이 새로운 조합의 찰떡궁합에 놀라워했다. 맛은 이미 나의 온 몸에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배달 치킨에 대한 나의 향수가 이내 부끄러워졌다. 프라이드 치킨이라는, 어떻게 보면 더없이 간단한 요리에서 이런 고급스러운 맛과 풍미가 나올 수 있게 만들다니, 셰프들의 고민과 노력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요리란 언제나 먹는 이의 입장에서 맛있는 요리다. 먹는 사람이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항상 고민하며, 적절한 테크닉과 조합을 찾아내고, 진심을 다해서 만들어 내는 요리가 좋은 요리다. 이 정의에 가장 부합하는 음식이 내겐 버터밀크 프라이드 치킨이었다. 좋은 요리를 규정하는 모든 요소들이 단연코 그 치킨에는 들어있었다.
지금 내 주방에서 손님들께 요리를 해드리면서 과연 내가 만들고 있는 요리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한 뒤에 나온 것인가 종종 고민하곤 한다. 더 좋은 조합, 더 나은 테크닉이 있는 건 아닐까. 더 잘 어울리는 재료, 더 적합한 조리법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최선일까,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걸까 고민하게 될 때, 어김없이 버터밀크 프라이드 치킨이 떠오른다. 셰프가 힘들수록 손님은 더 즐거워지는 역학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게 내 업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조금 더 힘들어지려고 애쓰면서 살아가야만 한다. 그게 셰프다.

*고병욱 셰프는?
미국 존슨앤웨일즈대에서 요리를 공부하고, 임기학 셰프의 레스토랑 ‘레스쁘아’를 거쳐 미국 나파밸리의 ‘부숑’에서 일했다. 현재 서울 서초동 ‘태번38’의 오너셰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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