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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한ㆍ중ㆍ일 정상회담의 환영만찬장으로 쓰이면서 하루 휴관한 국립현대미술관(사진)이 갑작스런 전시 종료 문제로 도마에 올랐습니다. 당초 1일까지 열릴 예정이었던 ‘올해의 작가상 2015’ 전시가 정상회담 행사로 하루 앞당겨 종료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자 참여작가들이 반발한 것입니다.
‘올해의 작가상’ 후보자로 전시에 참여한 하태범 작가는 10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이 미술관에 오는 일 때문에 전시를 조기 종료하게 됐다”고 적었습니다. 대통령 일정은 경호상 이유로 일정이 열리기 전까지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하 작가는 정확히 어떤 행사가 열리는지 알지 못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술관의 요구로 페이스북 게시물도 내려야 했습니다. 작가 입장에서는 미술관이 대통령의 사적인 이유 때문에 전시를 종료한다고 느낄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미술관 입장에서도 ‘국민에게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미술관을 대통령 일정 때문에 마음대로 썼다’는 논란이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결국 10월 27일 미술관은 ‘올해의 작가상’ 전시를 한 주 뒤인 5일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또 11월 3일 낸 해명자료에는 “하루 휴관한 1일의 대체 개관일을 16일로 정하고, 만찬장에 전시했던 3국 작가의 미디어아트 작품을 16일까지 일반에 공개한다”고 했습니다. 한국 작가 이이남의 ‘평화의 꽃’, 일본 작가 고세무라 마미의 ‘사계화초도’, 중국 작가 양용량의 ‘백야의 밤’은 현재 미술관 1층 로비에 전시돼 있습니다.
대통령의 행적은 기밀로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은 분명히 감안해야 합니다. 하지만 3국 정상회담 참여자들에게 “현대 미술을 소개하는 좋은 기회”라며 미디어아트 작품을 전시하면서 정작 전시 작가들에게는 전시를 일찍 닫을 수 있다고 일방적으로 통고해야 했을까요. 이들은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는 행사의 관계자, 어쩌면 가장 중요한 관계자로 인식됐어야 합니다. “국가 행사인 만큼 경호가 중요하다는 점은 알지만 전시를 위해 노력한 작가와 기획자들에게 제대로 양해를 구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미술계 관계자의 말은, 작게 보면 일 처리 과정에 문제를 제기한 것일 수도 있지만, 크게 보면 정부가 미술전시를 대하는 자세를 다시 잡아달라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도 한중일 정상들에게 우리의 현대미술을 제대로 소개하는 것이 최고의 의전일 수 있다는 인식이 부족해 보입니다. 이날 정상들이 지나간 길에는 설치미술작가 안규철의 개인전과 수묵화가 서세옥의 기증작품전이 열리고 있었지만, 내친 김에 3국 정상이 안규철의 ‘기억의 벽’ 앞에 나란히 서서 메모지를 붙였다면 현대미술에 대단한 이야깃거리였을 것입니다. ‘기억의 벽’은 관객들이 자신의 소중한 것을 메모지에 적어 벽에 붙이면 거대 벽화가 완성되는 작품입니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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