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은 미국, 인종은 백인, 나이는 중년(45~54세), 학력은 고졸 이하.’
2016년 미국 대선 동향에 관심이 많다면 단박에 공화당 선두주자이자 억만장자 부동산 개발업자 도널드 트럼프의 핵심 지지계층이라는 걸 간파할 것이다. 그런데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자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에 따르면 미국에서 바로 그 계층에서만 최근 15년간 사망률이 급증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은 2일 디턴 교수가 그의 부인과 함께 조사한 미국 중년 연령대의 인종 별 사망률 추세 자료를 인용, 2014년 현재 사망률의 절대 수치는 흑인(10만명 중 581명)이 가장 높고 백인(415명), 히스패닉(262명) 순이지만, 중년 백인에서만 유독 사망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1999년 340명선이던 히스패닉 중년은 사망률이 20% 넘게 하락한 반면, 백인(1999년ㆍ380명선)은 오히려 10% 넘게 증가한 것이다.
디턴 교수 부부는 이 현상의 원인을 트럼프 지지층과 겹치는 저학력ㆍ중년 백인 계층의 사회경제적 몰락에서 찾고 있다. 중년 백인을 학력으로 나눠 분석한 결과, 대졸 이상 계층의 사망률은 감소했지만 고졸 이하에서는 사망률이 최근 15년간 134명(22%)이나 증가했다.
디턴 교수 부부에 따르면 백인ㆍ저학력ㆍ중년 계층의 사망률 급증은 심장병, 당뇨병 등 질병이 아닌 자살, 알코올ㆍ약물남용이 주원인이다. 1999년에는 10명에도 미치지 못했던 알코올ㆍ약물중독에 따른 사망률이 2013년에는 30명까지 늘어났고, 자살률도 16명 가량에서 26명 내외로 늘었다. 폐 질환이나 당뇨병에 따른 사망률은 감소하거나 소폭 증가하는데 그쳤다.
미 언론은 다른 인종의 미국인은 물론이고 인구 구성이 백인 위주인 유럽 선진국에서도 사망률이 하락하고 있는데 미국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연구자들이 사망률 추세만 내놓았을 뿐 그 원인을 적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론들은 조심스럽게 저학력ㆍ중년ㆍ백인 계층의 경제상황이 다른 계층 대비 가장 악화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1999년과 2014년 기간 중 이들 고졸 이하 계층의 실질소득은 19%나 감소했다. 풍족했던 전 세대와 달리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삶이 이어지면서 쌓인 삶의 스트레스가 사망률 증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미국 일부 네티즌들은 이를 두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했기 때문”이며, “트럼프가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대로 불법 이민자를 몰아내고 중국과 일본을 혼내는 강한 미국이 된다면, 고졸자도 일자리가 보장되던 좋은 시절로 되돌아갈지 모른다는 희망이 트럼프 지지율의 고공행진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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