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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스틱 바르고 스마일… “예뻐지니 암과 싸울 자신감도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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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스틱 바르고 스마일… “예뻐지니 암과 싸울 자신감도 커져”

입력
2015.11.03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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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암 환우 대상 8년째 운영

“지루했던 병원 생활에 기분 전환”

다도 교실ㆍ꽃 공예 프로그램 등

다양한 체험으로 긍정적 힘 키워줘

21일 경기 분당서울대병원 소강당에서 열린 아모레퍼시픽의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프로그램에 참여한 암 환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암을 이겨낸 한 여성의 메시지가 담긴 영상을 보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21일 경기 분당서울대병원 소강당에서 열린 아모레퍼시픽의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프로그램에 참여한 암 환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암을 이겨낸 한 여성의 메시지가 담긴 영상을 보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메이크업 교육 캠페인에 참여한 뒤부터 아프기 전에는 몰랐던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했고, 거기서 자신감을 얻게 됐어요.”

21일 ‘아름다운 손길, 희망을 메이크업하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크게 붙은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소강당. 무대에 설치된 스크린에선 짧은 머리의 김지연(당시 36세·가명)씨가 밝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2010년 유방암 투병중이던 김씨는 아모레퍼시픽의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Make Up Your Life)’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후 가발 모델이 돼 새 삶을 살고 있다. 덕분에 암도 이겨낼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당신의 삶에 아름다운 변화,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라는 슬로건으로 아모레퍼시픽이 8년째 진행중인 대표적인 사회공헌활동이다. 여성 암 환자를 위한 일종의 외모 가꾸기 교육 프로그램이다. 암 치료 과정에서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피부가 칙칙해지고 거칠어지는 등 외모 변화 때문에 고통을 받는 여성 암 환자들을 돕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지난해까지 총 9,221명의 여성 암 환자와 2,904명의 아모레퍼시픽 카운셀러 자원봉사자가 참여했다.

아모레퍼시픽 카운셀러 이보람(29•왼쪽)씨가 21일 암 투병 중인 이경춘(63)씨에게 화장을 해주고 있다. “분홍색 립스틱이 잘 어울린다”는 얘기에 이씨는 “어색하다”며 웃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아모레퍼시픽 카운셀러 이보람(29•왼쪽)씨가 21일 암 투병 중인 이경춘(63)씨에게 화장을 해주고 있다. “분홍색 립스틱이 잘 어울린다”는 얘기에 이씨는 “어색하다”며 웃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이날 행사에는 분홍색 스카프를 두른 아모레퍼시픽 카운셀러 27명과 암 환자 39명이 참여했다. 모자를 깊이 눌러썼거나 짧은 머리인 여성들이 행사장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영상메시지가 끝나자 아모레퍼시픽 전문강사가 피부 관리법을 알려줬고, 직접 메이크업을 시연했다. 지난해 11월 폐암 4기 판정을 받은 이경춘(63)씨는 “매달 한 번씩 맞는 항암주사 때문에 머리카락이 수세미같이 뻣뻣해지고, 피부도 거칠어졌다”며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 자리에 왔다”고 말했다. 카운셀러 이보람(29)씨의 손길이 그의 얼굴에 닿자 생기가 돌았다. “보세요. 분홍빛 립스틱만 살짝 발라줬을 뿐인데 얼굴이 환해졌네요.” 이날로 두 번째 메이크업 자원봉사에 나선 이씨는 “환자들이 낯설고 어색해 할 수 있기 때문에 살짝 생기를 부여해주는 정도로 진하지 않게 화장을 해드린다”고 말했다.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들의 상태를 고려해 자칫 상처를 낼 수 있는 눈썹 손질용 칼은 사용하지 않는다.

신혼 때 이후로 처음 화장을 했다는 이씨는 “어색하다”면서도 주변의 “예쁘다”는 칭찬에 쑥스럽게 웃었다. “항암 치료 때문에 부은 얼굴이 몹시 신경 쓰였다”는 이씨는 항암 치료의 고통 때문에 여러 차례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분당서울대병원에 마련된 환자 모임에 나가게 되면서 생각을 고쳐먹은 이씨는 “가까운 지인들보다 오히려 같은 처지의 환자들과 어울리며 속내를 털어놓으니 풀리는 게 있다”며 “환자들끼리 만나면 삶의 희망이 자꾸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고 했다. 이씨는 “약을 먹으면 전기 감전되듯 다리가 저리고, 두피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쥐어뜯는 것처럼 아픈데 이런 데 도움이 되는 마사지 프로그램이나 두피·피부 관리 프로그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 한없이 슬펐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이 익명의 암 환자들로부터 투병 과정에서 생기는 고민을 적어달라고 했더니 외모에 대한 고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 환자(51)는 “항암 치료 중 제일 먼저 머리와 눈썹 등 온 몸의 털이 빠졌을 때 말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거울 앞에 서거나 밖에 나가는 게 두렵다”거나 “너무도 달라진 외모 탓에 아이들이 엄마를 창피해 하는 게 가장 마음 아팠다”는 응답이 많았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들에게 외모 문제가 과연 어떤 영향을 줄까 싶지만 ‘화장의 힘’은 셌다. 실제 학계에서는 ‘립스틱 사인’이란 용어를 쓴다. 투병 중 삶에 의욕을 잃었던 환자가 거울 앞에서 립스틱을 바르는 것은 다시 사회로 나와 삶에 적극적으로 임할 준비가 됐다는 신호라는 의미다. 환자들은 자신을 다시 가꾸기 시작하면서 병과 싸우고, 새 삶을 꿈꾸게 된다.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캠페인에 참여한 한 암 환자가 ‘립스틱 사인’과 함께 남긴 의지와 희망의 메시지. 아모레퍼시픽 제공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캠페인에 참여한 한 암 환자가 ‘립스틱 사인’과 함께 남긴 의지와 희망의 메시지. 아모레퍼시픽 제공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환자들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지루했던 병원 생활에 기분 전환이 됐다”, “잠시라도 아픔을 잊을 수 있는 시간을 가져 좋았다”, “우울했는데 퇴원하면 열심히 피부도 가꾸고 운동해서 다시 삶의 희망을 가꿔 아름답게 살겠다” 등의 소감을 남겼다.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프로그램에 단 한 번이라도 참여했던 암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스트레스 지수가 17% 줄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전문가들은 투병 과정에서의 스트레스 관리가 치료에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날 프로그램에 참여한 김은영(52)씨는 지난 6월 유방암 수술을 받았고, 12월 복직을 앞두고 있다. “환자라도 생기있게 외모를 꾸미면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환자가 되면 매사에 주눅들고 귀찮아져 화장은 꿈도 못 꾸죠.” 메이크업을 통해 반달 모양의 눈썹을 요즘 유행하는 일자형 눈썹으로 바꾼 게 마음에 든다는 김씨는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꽃도 만지니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메이크업 실습이 끝난 후 부케를 만드는 꽃 공예 시간이 이어졌고, 꽃을 만지는 환자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아모레퍼시픽은 메이크업 교육 프로그램과 함께 환자들의 심신 안정을 위한 꽃 공예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아모레퍼시픽 제공
아모레퍼시픽은 메이크업 교육 프로그램과 함께 환자들의 심신 안정을 위한 꽃 공예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아모레퍼시픽 제공

아모레퍼시픽은 이날부터 특별 프로그램으로 따로 실시했던 꽃 공예를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프로그램과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기존 메이크업 교육 프로그램으로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상의 취미생활을 통해 긍정적인 마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프리미엄 녹차 브랜드 ‘오설록’과 함께 하는 다도 체험, 플라워 서브스크립션 브랜드 ‘꾸까(Kukka)’의 꽃을 활용한 공예, 퍼스널컬러 커뮤니티 ‘컬러즈’의 ‘나에게 맞는 색상 선택법’ 등의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환자들뿐 아니라 자원봉사활동에 나서는 카운셀러들도 큰 보람을 느낀다. 이보람씨는 “메이크업을 통해 환자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더 감사함을 느낀다”며 “카운셀러 활동을 하는 동안만큼은 이런 봉사활동을 계속 하고 싶다”고 말했다.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캠페인은 아모레퍼시픽 카운셀러들의 자원봉사로 이뤄진다. 작년까지 총 2,904명의 카운셀러가 참여했다. 아모레퍼시픽 제공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캠페인은 아모레퍼시픽 카운셀러들의 자원봉사로 이뤄진다. 작년까지 총 2,904명의 카운셀러가 참여했다. 아모레퍼시픽 제공

류제천 아모레퍼시픽 부사장은 “아모레 카운셀러는 1964년 방문판매가 처음 도입된 이래 우리 사회에 아름다움의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아모레퍼시픽과 아모레 카운셀러가 함께 펼치는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캠페인을 통해 환자들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되찾게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프로그램은 암 수술을 받은 지 2년 이내인 여성환자로 현재 방사선이나 항암 치료 중인 환자라면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시간이 없어 참여하지 못하는 환자를 위해 카운셀러 자원봉사단이 직접 자택이나 병실로 찾아가는 서비스도 함께 운영 중이다. 전화(02-318-8673)로 안내 받을 수 있다. 11월에는 이화의료원, 순천향대 서울병원, 광주현대병원, 전북대병원, 가천대 길병원, 제주대병원에서도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성남=권영은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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